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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pr 11. 2023

언어의 온도? 일상의 온도!

[에세이] <언어의 온도> - 이기주

일상(日常) :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네이버 어학사전)


사전에 나와있듯 일상은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을 의미한다. 눈을 뜨면 하루를 시작하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하고, 지인들을 만나 근황을 공유하고, 다시 반복될 하루를 기다리며 눈을 감는 것. 살아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우리는 일상이라고 부른다.


일상은 우리의 곁에 당연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종종 그 빛의 세기가 약해지곤 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평범함"의 이름으로 점차 색을 잃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색의 일상에 색을 첨가하는 존재가 있으니, 이는 바로 "언어"이다. 언어는 마치 하얀 도화지 같은 일상에 흩뿌려지는 물감과 같아 우리의 반복된 일상을 다채롭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기주 작가의 에세이집 <언어의 온도>를 읽은 이유도 이와 같다. 언어는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언어의 온도는 곧 일상의 온도라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수천 개의 언어를 마주치는 우리가 언어에 의해 온도가 정해지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통해 온도를 측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과 가장 밀접하고 친근한 일상을 이해하기 위해 나는 "언어"라는 단어를 "일상"으로 바꾸어 <일상의 온도>를 읽어 나갔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것이 참 많은 듯하다."
(p.67)


일상도 그렇고 언어도 그렇고 단어만을 들었을 때 우리에게 별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당연한 것이니까. 일상과 언어는 우리 인간 모두에게 주어진 당연한 것이니까.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일상을 마주치지 않거나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종종 일상과 언어의 소중함을 잊곤 한다. 마치 언제나 우리 곁에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과 함께.


나에게도 언어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 휴학한 기념으로 친구와 함께 여행에 가기로 계획했고, 마침 비행기값이 싸서 일본에 다녀오기로 했다. 매일 반복되는 도서관의 하루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긋지긋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자는 마음에 6시간이 넘는 이동시간도 힘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여행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길 더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과 언어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우리는 갓난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눈앞을 뒤덮은 타국의 언어는 마치 비밀문서의 암호처럼 느껴졌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타국의 언어는 나를 이방인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어찌할지 몰라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작은 스마트폰에 모든 것을 의지한 채 쭈뼛거리며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번역기를 통해 겨우겨우 타국의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이뤄나갔지만, 깊은 생각을 공유하긴 어려웠다. 어디서 왔냐, 몇 살이냐, 여행 중이냐 등 간단한 질문에 대답을 할 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말할 수 없었다. 어찌나 답답했던지 우리는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을 때마다 입 밖으로 한국말을 내뱉었고, 그들 역시 난처하다는 표정과 함께 모국어로 모르겠다는 대답을 했다. 언어의 장벽이 이렇게 높고 단단할 줄이야.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한 언어가 몹시 특별해진 순간이었다.


일상과 언어는 분리될 수 없다. 이는 곧 한쪽을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반대쪽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대화, 회의, SNS, 소리, 표정과 몸짓 등 우리의 주변에는 수많은 언어가 존재하지만 일상과 언어가 연결되어 있다는 자각이 부족한 우리는 가끔 언어의 온도에 미처 신경 쓰지 못한다. 가족과의 대화는 "잔소리"가 되어 무시당하기도 하고, 지인들의 목소리에 담긴 간절함을 못 알아차리기도 한다. 나를 가장 잘 나타내는 "일상"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는 곧잘 무시되곤 한다.


우리의 일상을 지켜나가고 싶다면, 혹은 누군가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그 대상의 "언어"에 집중해 보자. 특정 상황에서 어떠한 언어를 사용하는지. 그 높낮이가 어떠한지. 자주 내뱉는 언어는 무엇이고, 왜 그 언어를 사용했는지 말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도 있지 않은가. 가장 당연하지만 가장 소중한 일상의 온도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언어의 온도를 파악해 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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