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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pr 12. 2023

오직 돼지만이 행복한 세상

[소설] <동물농장> - 조지 오웰

동물이란 우리에게 어떠한 존재인가. 우리의 식탁 위에 올라 양분이 되고, 재화로서 사고 팔리는 생명체다. 때로는 우리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하고, 우리의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의 소모품이 되어 생을 마감한다.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동물은 "상품"의 역할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그러한 동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인간의 농장에서 인간을 위해 일하던 동물들이 자유를 위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물론 반란이라는 말은 지극히 인간의 시각에서 나온 단어다. 동물의 입장에서 이는 혁명이자 투쟁일 터.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농장은 더이상 인간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단 하나. "자유"


"메이너 농장"에 살고 있는 동물들은 농장에서 가장 지혜로운 돼지 "메이저"의 유언으로 인해 혁명을 꿈꾼다. 그는 동물들의 삶이 비참하고 고달픈 이유는 모두 "인간"때문이라고 하며 인간을 몰아내기만 하면 그들의 굶주림과 고된 노동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례 없던 주장에 동물들은 모두 환호하며 자유의 몸이 된 스스로를 그린다. 인간의 선택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삶을 살아나갈 수 있는 것. 그렇다. 그들이 환호하며 꿈꾸는 이상은 다름아닌 "자유"다.


그들은 우연한 계기로 자유를 얻는 데 성공한다. 농장의 주인 "존즈"와 그의 일꾼들이 방심한 사이 동물들은 합심하여 인간들을 향해 달려들었고, 평소 동물들이 인간을 향해 반항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당황한 그들은 농장에서 달아난다. 인간들의 입장에서 동물들은 그저 소유물, 혹은 노동꾼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 언제까지나 동물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한 규칙은 순식간에 깨졌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지배자도, 영원한 피지배자도 존재하지 않던 것이었다.


인간과 결코 다르지 않은 동물


동물들이 인간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그들의 행보를 바라보면 인간의 욕구 충족과 매우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5가지 욕구를 갖고 있고 이러한 욕구에는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인데 <동물농장> 속 동물들 역시 자유를 쟁취한 이후 완벽하게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첫 번째 단계인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농사를 지어 배고픔을 해결하였고, 안전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을 위협하는 인간과 맞서 싸웠다. 또한 애정과 소속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농장에서 무리를 짓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그 다음으로 존경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했다.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는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지도자인 "나폴레옹"이 독재자가 되어 농장을 자신만의 소유로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어 충족되었다. 자유를 쟁취한 동물들은 서서히 인간이 밟았던 절차들을 밟으며 "인간화"되어가고 있던 것이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존재하는 <동물농장>


인간화된 동물들은 인간의 역사를 그대로 따랐다. 지배자로부터 해방된 이후 그들만의 7계명을 정하고, 위원회를 만들었으며 파벌을 형성하고 정부를 만들었다. 이 작품을 읽으며 가장 소름돋았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작품 속 상황이 놀라울 정도로 우리의 역사와 닮아 있지 않은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이후 각종 위원회가 설립되고, 정치적 이념으로 인해 파벌이 형성되었으며, 같은 민족임에도 양 방향으로 갈라진 뒤 결국 독재자가 등장하는 상황은 우리에게 익숙한 광경이다. 분명 이 책은 1944년에 완성된 작품임에도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상황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을 보았을 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오직 돼지만이 행복한 세상


작품 중반부터는 오직 돼지만이 이 농장의 주인이 된다. 인간의 언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동물은 오직 "돼지"만이 유일했기 때문에 그들은 지식을 독점하여 "지배층"이 되었다. 사회가 정한 규칙인 7계명을 제대로 해석하는 동물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돼지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대로 7계명을 수정하며 권력을 행사한다. 지배층에게 유리한대로 법을 개정하고,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는 것은 인간들의 사회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제는 "동물농장"의 독재자가 되어버린 돼지 "나폴레옹"은 두려울 게 없다. 자신을 더이상 "동무"가 아닌 "우리의 지도자 나폴레옹 동무"라고 부르도록 명령하고, 자신의 주인이 살았던 별채에서 호화스러운 삶을 누린다. 다른 동물들이 이에 불만을 갖고 목소리를 내려하지만 나폴레옹의 곁에 존재하는 9마리의 사냥개들과 자신들보다 목소리가 큰 돼지들 때문에 그 불만은 금방 사그라든다. 그렇게 돼지를 제외한 동물들은 모두 돼지의 말에 세뇌당하며 점차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된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p.117)



결국 동물들이 정한 7계명은 모두 지워지고 위의 내용만이 존재했다. 돼지들은 모든 동물의 평등을 주장했지만 "어떤"동물이 더 평등한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돼지들은 결국 두 발로 서는 데 성공했다. 돼지들은 결국 인간들과 협력하는데 성공했다. 이제 동물농장에는 더이상 돼지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한 동물을 우리는 동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다시 동물들의 세상이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다. 오직 돼지만이 행복한 세상에서, 아니 오직 인간만이 행복한 세상에서 "동물농장"의 역사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인간이 되어버린 돼지는 결국 물러나고 새로운 돼지가 등장하고, 새로운 인간이 만들어지는 무수한 반복. 아무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이름을 "동물농장"이라고 바꾸는 게 맞지 않을까? 동물과 인간은, 농장과 세상은 다를바 없어 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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