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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pr 14. 2023

땡전 한 푼 못 벌지만 글을 씁니다.

[에세이] <진정한 장소> - 아니 에르노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로 한지 10년이 넘어간다. 현재 이렇다 할 직업도 없고 글로서 돈을 벌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의 꿈은 언제나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좋아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쓰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연극부에 들어가 대본을 쓰기도 했으며, 문예창작 동아리를 만들어 단편 소설집을 만들기도 했다. 더 이상 글을 쓸 소재가 떠오르지 않으면 블로그에 개인 일상을 적기도 했고, 그마저도 쓸거리가 없으면 일기장을 펼쳐 그날의 감정을 마구 휘두르기도 했다. 내게 직업이 무어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지만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수 있다. 그냥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프랑스 현대 문학의 거장인 아니 에르노와의 인터뷰를 엮은 이 책 <진정한 장소>에서 나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쓴다는 것은 어떠한 행위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즉각적으로 노동의 대가를 얻는 행위도 아니고(애초에 노동이라는 단어와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확실한 정답과 방법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범위도 무척이나 애매한 이 활동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까. 마치 허공에 흩뿌려진 연기를 실로 엮는 것같이 느껴지는 이 활동의 정체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쓰고 싶다는 욕구


"민족학에 대한 야망은 전혀 없었어요. 단지 하루하루를 살면서 간직하고 싶은 이미지들을 붙잡고 싶은 욕구였죠."
(p.19)


저자는 이 책에서 글쓰기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매우 다양하게 표현한다.(아마 인터뷰 성격 상 날 것의 표현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겠다.) 그중 글쓰기에 대한 나의 마음에 가장 근접한 표현이 바로 이 문구였다. 하루를 살아가며 간직하고 싶은 이미지들을 붙잡고 싶은 욕구. 그렇다. 나에게 글쓰기란 그저 목적성을 띄는 "행위"가 아닌 본능에 가까운 "욕구"였던 것이다. 


글을 쓰는 직업이 되기 위하여. 글을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혹은, 글을 통해 밥 벌어먹기 위하여.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어떠한 목적보다는 조금 더 설명하기 어려운 욕구에 가까웠다. 인생에서 굳이 필요하진 않지만 없어서는 안될 존재. "사는 데" 필요하지 않지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행위. 뭐랄까... 이를테면 생존과 인생의 필요충분존재 같은 느낌이랄까? 



땡전 한 푼 못 버는 글쓰기


"글을 쓰기 시작하면 시간은, 시계 속의 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 3시간 후에 별로 한 게 없다는 느낌으로 매우 불행해질지라도 중요한 것은 그 몰입 상태에 머무는 것이죠.
(p.115)


글을 한 번이라도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글을 쓰는 활동에는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떤 내용을 써야할지 고민도 해야하고, 더 좋은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썼다가 지우길 반복해야 한다. 중간에 글이 막히면 좌절할 시간도 필요하고 자신의 생각을 글에 녹일 에너지도 필요하다. 그렇게 완성된 글은 작가의 의지에 따라 세상 밖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영원히 묻히기도 한다. 


이렇듯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행위임에도 우리는 때로 "별로 한 게 없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특히 즉각적인 보상이 없는 글쓰기일수록 더욱 그러한 느낌이 강하다. 아마 이곳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도 이와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몇 시간 동안 고민하고 에너지를 소모하여 글을 썼지만 막상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별로 없다. 그저 완성된 글을 보며 뿌듯함을 느끼거나 고개를 끄덕일 뿐.


그럼에도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앞서 말한 욕구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일상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구, 텍스트를 통해 미지의 세상을 상상하고 싶은 욕구. 돈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더욱 소중한 가치를 찾기 위해 우리가 이렇게 공을 들여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제목이 <진정한 장소>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영역이나 세계를 일컫는 말인 "공간"과 달리 "장소"는 어떠한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을 뜻한다. 저자에게 진정한 장소란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가 이루어지는 곳, 자신의 욕구가 자연스레 일어나는 곳이 아닐까. 세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세상을 만드는 그러한 장소 말이다.


당장 취업을 준비해도 모자랄 나이에 한량처럼 책이나 읽고 글을 쓰고 있다니. 주위 사람들을 포함한 사회적 알람들은 나에게 틀린 길을 걷고 있다고 요란하게 소리친다. 그러나 어쩔 수 있나. 나의 모든 본능과 욕구의 시선이 글을 향해 있는데. 언젠가는 나의 욕구가 사회에 받아들여지리라고 믿는다. 세상에는 수많은 역할들이 존재하니 쓰는 욕구에 미친 내가 낄 자리 하나 없을까?


"쓰고 싶은 사람"의 꿈이 지속되니 이제는 "써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땡전 한 푼 벌지 못하더라도 써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비록 정상적이지 않은 길에 발을 들였지만 이미 그 험난한 길에 길들여졌다. 정답을 밝히는 것보다 문제를 만들어 나가는 행위에 더 가치를 두는 나의 길이 언젠가는 빛을 보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믿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그저 글을 쓴다.


"설사 모조리 틀린 답일지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학은 정답을 보여주는 답안지가 아니니까..."
(옮긴이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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