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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pr 17. 2023

재밌는 글, 성공한 작가.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재밌는 글이란


확실히 하루키의 글은 재밌다. 여기서 재밌다는 표현은 작품적으로 글이 뛰어나거나 문장이 잘 읽힌다는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재밌다는 뜻이다. 왜 가끔 그런 적 있지 않은가.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거리거나 코웃음을 참지 못하는 경우. 나에게는 하루키의 글이 그랬다. 얼마 전에 읽은 그의 소설집 <일인칭 단수>가 특히 그랬는데, 소리 한 점 내는 것도 무척 조심해야 했던 집 근처 도서관에서 웃음을 참느라 꽤나 애를 먹었다.


아직 그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루키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하나 같이 똑같은 말을 한다. 하루키의 소설은 재밌어서 술술 읽힌다고. 그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된 이유도 그의 글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작품은 독자들에게 많이 선택받은 작품이고, 독자들은 어쨌거나 재밌는 작품을 원한다. 아마 문학에서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말은 글이 재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나 역시도 독자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은 "글이 너무 재밌어요!"라는 말이니까.


하지만 그의 글이 많은 사랑을 받는 데에는 그가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오직 재미만을 담은 책이라면 서점에 널리고 널렸으니까. 재밌는 글이라면 나름대로 그 이유가 있는데 내가 하루키의 글을 재밌다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솔직함"이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하루키는 12가지의 목차로 에세이를 작성했다. 자신의 직업인 소설가에 대해서, 문학상에 대하여, 무엇을 쓸지에 대하여, 어떤 인물을 등장시킬지에 대하여 등 30여 년간의 작가경험을 이 책에 압축하여 담았는데, 내가 느낀 바로 모든 글이 투명할 정도로 솔직했다. 자신의 지난 과오를 인정하기도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으며, 자신의 경험에 빗댄 인생철학을 담담히 말하기도 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자유롭게 말하는 에세이의 의미에 가장 가까운 글이었다. 솔직해서 담담했고, 그 담담한 "오리지낼리티"에 나는 빠져든 것이다.


가끔 재밌는 글을 쓰기 위해 나의 경험을 과장하거나 부풀린 적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평범해 보일까봐. 혹은, 스스로 재미없는 글을 섰다고 느낄까봐. 하지만 거짓된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지점에서 분명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의 손가락이 멈추게 된다. "아.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앞뒤 맥락이 전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자전적인 이야기가 주인공인 경기장에 꾸며낸 또 다른 내가 등장했으니 경기가 원활하게 진행될리가 있나. 거짓으로 만들어진 나의 이야기는 얼마 못 가 생기를 잃고, 보여주기 부끄러운 글로 내게 남겨진다.


무엇이 우리를 작가의 길로 이끌었나.


다른 직업들과 달리 작가는 좋은 성적과 직업적 성공이 비례하지 않는 독특한 직업이다. 게다가 자신의 결과물에 따라 즉각적으로 보상을 받는 다른 직업들과 달리 작가는 보상을 받기 위한 시간이 길다. (길어도 매우 길다.) 과거에 아무리 좋은 작품을 썼더라도 다음 작품이 형편없으면 사람들에게 외면받기 십상이다. 또, 아무리 좋은 글을 썼다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긴 쉽지 않다. 즉각적인 보상에 길들여진 현대인, 특히
"빨리빨리 민족"의 대표 선두주자인 한국인 사이에서 작가로 성공한다는 것은 스스로 험난한 길을 찾아 걷는 비효율적인 선택이 아닐까.


그럼에도 한국에는 현재 적지 않은 수의 사람이 작가가 되길 원하고 있다. 출판산업이 사장된다는 말은 10년 전부터 돌던 말이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하루에 수백 권의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브런치와 같은 커뮤니티뿐 아니라 독립출판, 웹소설, 신춘문예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새로운 작가들이 탄생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람들을 작가의 길에 빠지게 만들었을까? 


영어에 epiphany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본어로 번역하면 '본질의 돈연한 현현' '직감적인 진실 파악'이라는 어려운 단어입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라는 느낌입니다.
(p.46)


모든 직업들이 그렇다곤 하지만 작가라는 직업은 특히 "욕구적 성격"이 강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이라기보단 뭐랄까 천직에 가까운 느낌? 장강명 작가가 자신의 책에 싸인과 함께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라고 적는 것과 같이 나 역시 스스로 생각한다. "나는 쓰기 위해 태어났고, 써야지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써야 하는 사람이고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아쉽게도 나에게 글을 꼭 써야 하는 'epiphany'는 찾아오지 않았다. 아니, 찾아왔는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분명 나에게도 어느 날 돌연 '파박'하는 뭔가가 나의 뇌리를 스쳤을 것이고, 그때부터 스스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을 테지. 덕분에 부모님의 걱정 어린 잔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찾았으니 그 파박임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올려야겠다.


성공한 작가

소설 한 편을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뛰어난 소설 한 편을 써내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 그러나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건 아마도 '재능'과는 좀 다른 것이겠지요.
 (p.29)

하루키는 그의 에세이에서 성공한 작가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직업으로서 그가 작가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를 우리에게 설명한다. 그것은 바로 "꾸준하게 글을 쓰는 것". 하루키는 매일 같은 새벽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분량의 글을 꼭 완성시킨다고 한다. 소설이 완성되었더라도 퇴고를 하거나 에세이를 쓰는 등 꼭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쓴다고 하였다. 소설가 역시 "직업"이기 때문에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인 자신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이다.


나 역시도 성공한 작가는 "멈추지 않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까도 말했듯이 하루에도 수백 권의 책이 우후죽순 세상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10년 이상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극소수에 달한다. 본업과는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직업의 특성과 큰 연관이 있다.


흔히 번아웃(burn out)이라고 불리는 증상은 작가에게는 라이터스 블락(writer's block)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게 된다. 글을 쓰다 보면 글감이 떨어지거나 글을 쓰더라도 막막하게만 느껴질 때를 말하는데, 이는 나에게도 종종 찾아오는 현상이다.(사실 지금도 느끼고 있다.) 분명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재밌지만 글을 쓰다 보면 느끼는 막막함. 그걸 견뎌내어 글을 완성해 내고, 또 다음 글을 써 내려가는 게 성공한 작가의 기준이 아닐까 싶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을 때면 매번 똑같은 말로 끝을 맺곤 한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하고, 꾸준하게 글을 써야 한다고.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는 말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기초가 되는 중요한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준 성공한 작가인 하루키 역시 계속해서 이 말을 반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직업으로서의 작가가 되기 위해 이 길에 발을 내디뎠으므로 스스로에게 다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솔직한 마음으로 재밌는 글을 쓴다. 그리고, 꾸준하게 글을 써내려간다. 성공한 작가가 되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으니 이제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계속해서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 성공의 반열에 오르겠지. 막연하지만 확실한 이 마음이 계속해서 내 가슴속에 꿈틀거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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