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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pr 18. 2023

쓸데없이 필사를 왜 해?

[에세이] <필사의 기초> - 조경국


필사. 사실 우리에게 그렇게 익숙한 단어는 아니다. 최첨단 미디어시대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전자기기가 아닌 노트와 팬으로 글을 베껴 쓴 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책의 내용을 휘릭 옮겨 적을 수 있고, 복사와 붙여 넣기 기능을 이용하면 단 몇 초에도 그 내용을 워드파일에 옮겨 적을 수 있다. 시간이 금보다 소중해진 현대사회에서 글자 하나하나를 노트에 옮겨 적는 일은 말 그대로 "쓸데없는 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어느 분야에나 덕후는 존재하는 법. 모두가 쓸모없는 일이라 생각해도 누군가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길을 걷는다. 10년이 넘도록 필사를 하고 있는 책방지기 조경국은 그의 저서 <필사의 기초>에서 필사에 대한 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드러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필사를 1년도 아니고 10년 동안 지속했다니. 그를 필사덕후로 만든 필사의 매력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사실 현대인은 필요 이상의 빛과 소리 그리고 관계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피로를 느끼면서도 거기에 익숙해지면 홀로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두려워 합니다. 가끔은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말이죠.
(p.49)

작가가 말하는 필사의 즐거움은 다음과 같다. 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 ② 차분한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점. ③ '기억의 연장' ④ 돈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 ⑤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위 즐거움들은 독서의 즐거움과 매우 유사하다. 마음에 와닿는 책의 문장을 베껴 쓰는 것은 독서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므로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그러나 필사와 독서의 즐거움을 다 경험해 본 내가 느낀 바로 그 즐거움의 결이 약간 달랐다. 독서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라면 필사는 그 음식을 소화시키면서 천천히 음미하는 느낌이랄까?


그렇다. 필사는 섭취와 소비같은 1차적 과정이 아닌 소화와 재생산등의 2차적인 처리과정이다. 작가의 말대로 현대인은 필요 이상의 빛과 소리, 그리고 관계에 노출되어 있다. 외부에서 쏟아지는 대량의 정보에 노출되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자극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과식을 해서 속이 더부룩함에도 계속해서 입에 음식이 들어오는 것처럼 현대인은 모두 "자극의 비만"을 갖게 되었다. 그 비만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로 작가는 "필사"를 내세운 것이 아닐까. 




나 역시 자극을 피해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쓰기"라고 생각한다. 필사를 하든 일기를 쓰든 글을 쓰든 쓰기 위해선 멈출 수밖에 없다. 가파른 숨을 잠시 멈추고 기억을 재배열하여 스스로 생각의 프로세스를 가동해야 한다. 자극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큰 사람들이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나같이 약간의 자극에도 몸이 빳빳해지는 사람들에겐 이러한 활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이 전혀 "쓸데없이"보일 지라도 말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단정하게 문장을 옮겨 쓰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누군가에게 뽐내기 위한 목적으로 필사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p.66)



애당초 어떠한 행위가 "쓸데없다"라고 보이는 것에는 사회의 통념이나 선입견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어떠한 행위에도 쓸데없는 일은 없다. 다만 어느 것에 가치를 더 두었느냐의 따라 그 시각이 다른 것뿐이다. 돈에 중요한 가치를 둔 사람에게는 부의 추적이 가장 중요할 것이고, 명예에 중요한 가치를 둔 사람은 자신의 명성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당연히 그 행동이 쓸모없게 느껴질 터.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경우다.




필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글을 쓸 수 없다. 대중들의 관심이 덜한 마이너한 장르임에도 글을 쓰고 책을 냈다는 것은 엄청난 사랑이 동반되지 않다면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이니까. 결국 작가는 10년간의 노력과 함께 쓸데없어 보이는 행동으로 쓸모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만약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전혀 쓸모없어 보일지라도 그것을 지속하길 바란다. 진실된 사랑이 동반된 행동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스스로의 쓸모를 증명해 낼 것이다.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형태를 만들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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