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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pr 19. 2023

내 책꽂이는 잡탕 플레이리스트

[소설] <2022 제13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 임솔아 외


내 책꽂이에 주로 자리를 차지하는 녀석들은 소설과 에세이지만 인문학, 시집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이 중간중간 섞여있다. 선호하는 출판사나 작가도 따로 없어 그 순서도 뒤죽박죽이다. 하지만 오히려 좋다. 장르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평생 그 맛밖에 모를테니. 가끔은 매콤한 맛의 책도 읽어보고 싱거운 맛의 책도 느껴보면서 책꽂이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인다. 그런 면에서 내 책꽂이는 잡탕 플레이리스트와 그 결이 비슷하다.


그럼에도 문학동네에서 발행한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은 해마다 한 권씩 구매해서 책꽂이에 꽂아 넣는다. 등단 십 년 이내의 작가의 작품 중 각종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들을 문학동네에서 심사한 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일 년에 한 권씩 7편의 수상작들을 읽으며 요즘 현대문학이 추구하는 방향과 최근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어 글이 막힐 때면 책꽂이에서 종종 꺼내곤 한다.




7명의 작가가 쓴 7개의 단편 소설을 묶은 것이니만큼 작품의 주제가 저마다 상이하다. 페미니즘, 성소수자, 감염병, 부부의 미적지근한 사랑 등 접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주제들이 한 권의 책에 담겨있다. 때문에 한 편의 소설을 읽은 뒤 입을 게워내는 것과 같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작품을 읽는 편이다. 마치 각국의 음식을 코스요리로 맛보는 것과 같다랄까. 아니 그것보다는 잡탕이라는 표현이 구수하니 더 어울리겠다.


총 7가지의 작품 중 어느 작품에 대해 깊이 얘기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각 작품마다 전하는 메시지가 다르니 5~6 문단의 짧은 글로 이 책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잡탕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무엇 때문에 맛있다고는 확실하게 말 못 하겠지만 맛있는 건 틀림없다. 개 중에 오늘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작품은 김병운 작가가 쓴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이다.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은 발행된 책의 규격 기준 30페이지 내외의 짧은 단편 소설이다. 퀴어 소설의 작가 "윤범"이 과거 게이 인권단체의 독서 모임에서 만난 "주호"의 아내 "인주"와 대화하는 것으로 소설이 진행된다. 이 소설에 내가 깊이 빠져든 부분은 바로 "인간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나는 정체성이라는 게 필요하면 장착했다 싫증나면 벗어버리는 게임 아이템 같은 건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고, 도대체 어떻게 성적인 끌림을 느낄 수 없다는 건지, 아니 그럴 수 있대도 그건 정체성이라기보다는 일정 기간의 상태가 아닌지 묻고 싶었다.
(p.122)


윤범은 게이와 작가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는 확실하게 남성에게 이끌렸고, 스스로 예술가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그의 친구인 주호는 다소 애매한 정체성으로 삶을 살아간다. 그는 타인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에이섹슈얼이지만 연애를 한다. 그는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닌 양성애자였고, 게이 인권단체에서 활동했지만 여성과 결혼했다. 또한 그는 예술가를 꿈꾸는 배우였지만 이제는 밥벌이를 위해 꿈을 접고 경영지원 업무를 배운다.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바꿔가는 주호는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한 윤범에게 굉장히 낯설고 특이한 존재로 느껴진다.


소설은 주호의 아내 인주가 주호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내게는 이 부탁이 그들의 정체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달라는 부탁으로 들렸다. 모호하지만 확연하게 존재하는 자신들의 정체성이 여기 존재한다고, 정체성을 확고히 하라는 사회의 핀잔에도 꿋꿋이 버티는 중이라고 말이다. 확실히 그렇다. 정체성이 변했다는 것은 뭐랄까 삶의 불가항력을 거스르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그런 면에서 작가라는 정체성은 굉장히 희미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등단이라는 제도가 있긴 하지만 굳이 등단을 통해서만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어떠한 방법으로든 글을 쓰고 그 작품을 세상에 내보낸다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괜히 브런치에서 우리를 작가라고 칭하는 게 아니다. 어찌됐든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의 정체성을 조금은 갖고 있다.


애매한 정체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주호가 마치 나의 책꽂이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꽂혀있는지 모르겠는 난잡한 나의 "잡탕 책꽂이"처럼 말이다. 무슨 음식인지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온갖 재료가 섞여있는 그것을 우리는 잡탕이라고 부른다. 때로는 고기가 주 재료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야채로만 가득 채워져있기도 하며, 때로는 각종 향신료들이 범벅되어 세상에 없던 맛을 만든다. 그러나 그 매력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잡탕을 찾는 게 아닐까. 온갖 정체성이 뒤섞인 그 오묘한 맛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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