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데우스 엑스 마키나> - 꼬마비
나 같은 몽상가에게 신이란 참 친숙한 존재다. 나는 현재 종교가 없음에도 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이 있어야 시간을 거스르는 시간여행을 하거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를 만나는 등의 내 망상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신을 믿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현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거나,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는 일들을 거스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이뤄질 수 없는 상상 속에서 대부분의 하루를 보내는 나에게 신이란 어쩌면 필연적 존재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신을 바라는 이유는 그가 전지전능하기 때문이다. 웹툰의 제목이기도 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 쓰인 무대 기법 중 하나로서, 갑작스럽게 신이 나타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하는 수법을 말한다. 이 웹툰은 현실세계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신의 존재로 인한 혼란과,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전지전능한 신의 능력으로 인해 발생되는 인간상의 변화를 그려낸다. 신이 인간과 조우하는 수법은 많은 창작물에서 흔하게 쓰이고 있지만, 이 웹툰은 인간과 신에 대한 보다 철학적이고 심오한 물음을 독자에게 건넨다.
웹툰은 현실세계에 갑작스럽게 신이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늘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존재가 떠다니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의아해하지만, 곧 신이 직접 인간세계로 내려와 인간에게 천벌을 내리며 세상은 신의 존재를 확신하게 된다. 이후 신은 세계 곳곳에 등장해 알 수 없는 이유로 많은 이들에게 은총을 내리거나 심판을 내린다.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과 함께하는 세상이 현실화 된 것이다.
신이 인간에게 처벌을 내리는 "신의 심판"과 "신의 은총"은 인간에게 예상치 못한 큰 혼란을 가져다준다. 왜냐하면 신의 섭리 인간의 섭리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민들에게 거짓을 말한 국회의원을 처벌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정의에 손을 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구리를 잡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던 인간이 죽자 인간이 아닌 개구리를 부활시키는 것을 보면 신의 정의가 우리의 정의와 다르게 보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밤마다 신을 마주하는 꿈을 꾸게 된다. 그 꿈이 현실인지, 가상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주인공은 자신이 매일 밤 신과 대화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신을 모시는 단체인 "기사단"의 단장을 맡는다. 기사단의 단원들은 주인공을 신의 대리자로 생각해 그에게 수많은 기도를 대신 전하지만, 한낱 인간에 불과한 주인공은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괴로워한다.
자신의 운명에 고통스러워하던 주인공은 신에게 도대체 자신에게 원하는 게 뭐냐며 자신의 꿈에 매번 나타나는 이유를 묻게 된다. 주인공의 이러한 물음에 신은 꿈 속에서 주인공에게 사슴을 나타나게 하거나, 그것을 다시 맛있는 고기로 만드는 기적을 보여주지만 주인공은 만족하지 못한다. 이에 신은 "이거 봐, 나는 너 한 명한테도 못 맞춰주잖냐. 내가 너한테 왜 그러냐고? 너는 나한테 왜 그러냐?"라고 말하며 신의 섭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신은 전지전능하지만 모든 이들의 기도를 다 들어주지 못한다. 수십억 사람들의 기도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방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한 나라의 수장을 미워해 그를 죽여달라고 소원을 빌 수 있지만, 누군가는 그 수장을 존경해 영원히 살아남아 나라를 통치에 달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신이더라도 모든 인간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신을 원망하는 이유도 이 때문 아닐까? 신이 공평해야 할 이유는 없고, 한 개인만을 위한 신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으니.
작품은 후반부로 넘어가며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본질을 수행한다. 신은 기사단을 포함한 10개의 종교단체를 암묵적으로 지목하며 종교의 단일화를 수행한다. 진실된 마음으로 신을 믿지 않고, 신에 대한 믿음을 도구로 삼아 타인에게 이득을 취했던 종교단체의 수장들은 차례로 자멸하게 된다. 결국 기사단은 최후의 종교단체가 되었고, 주인공은 유일한 신의 대리자가 되었지만 주인공은 지난 꿈에서와 동일하게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신에게 묻는다. 그러자 신은 자신의 외형을 주인공의 모습과 동일하게 바꾼 뒤 하늘에서 내려와 손가락으로 주인공을 가리킨다.
신이 주인공의 모습을 한 채 주인공 앞에 나타난 이유는 스스로가 신이 되라는 뜻이라 생각한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불리는 신의 전지전능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들의 기도는 충족될 수 없었다. 또한, 그 누구도 신의 섭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신이 현실 속에 존재한다 하더라도 인간의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없으니 스스로가 신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세지는 신의 유무나, 종교 단체의 선악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신을 바라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며, 어떠한 가치관을 세상(신)에게 인정받고 싶으냐의 물음이다. 앞서 말했듯 모두를 위한 신이 존재할 수 없다면, 모두가 각자의 신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미지의 존재에게 향했던 기도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리며 스스로의 욕구를 깨닫고, 자신의 가치관을 신이 아닌 스스로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분명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 등장하는 "신의 은총"과 "신의 심판"처럼 눈으로 보이는 큰 변화는 당장 일어나진 않겠지만, 스스로가 인생의 신이 된다고 생각하면 내면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