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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Oct 15. 2023

하늘공원의 억새와 코스모스

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10월의 산책코스

가을이 되면 우리 목은산모임에서 연례행사로 빠지지 않고 가는 곳이 있다.

상암동 하늘공원의 억새밭길이다.

며칠 있으면 억새축제가 시작된다고 광고에 뜬다.

축제가 시작되면 사람들로 붐빌 테니 미리 가보기로 한다.

억새가 얼마나 피어 있을지 궁금했다.


월드컵경기장역 1번 출구로 나가니 억새구경 가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있다.

우리는 우선 경기장 건물 쪽으로 올라가서 호수가 있는  평화공원과 연결되는 육교를 건너간다. 육교를 건너  주차장을 지나면 평화광장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구름다리와  하늘공원으로 올라가는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하늘계단이 보인다.

우리는 하늘계단으로 오르지 않고 입구 직전에서 왼쪽으로 빠지는 길로 들어선다. "희망의 숲길"이라는 메타세쿼이아길이다. 지난여름이 시작될 때 이 길을 걸어 보려 했으나 그때는 이 구간이 공사 중이라고 막혀있어서 못 가고 아쉬워한 적이  있다. 오늘은 다행히도 이 길이 열려 있다.


7, 8년 전 처음으로 이 메타세쿼이아길을 발견하고 걸으며 우리는 얼마나 감탄하며 좋아했던가?  그 이후로 "희망의 숲길"은 우리가 좋아하는 산책길 목록에 앞 순위에 포함되었다.


죽죽 벋은  키 높은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길에 초록색 나뭇잎들 사이로  아침 햇살이 내려와 비치는  장면이 그림 같다.

이제는  나뭇잎의 푸른빛이 힘을 잃어 가고 있어 보는 이의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희망의 숲길"은 계속해서 자유로 옆 강변 쪽 메타세쿼이아길로 이어지지만  도중에 하늘공원 입구와 만나기도 한다. 우리는 공원입구로 들어간다.

이곳 입구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길은 보행자와 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와 또 한 길은 그 옆 숲 속으로 난 산길이 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숲 속 산길을 막아 놓았다. 할 수 없이 포장도로를 걷는다. 차도라고 해도 일반차량은 다니지 못하고 관광객용 맹꽁이차만 다닌다. 전에 왔을 때보다 오늘은 맹꽁이차가 훨씬 더 자주 올라간다.  

억새밭 초입에 도착하니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진다. 약간 높은 곳에 자리한 휴게소 앞에 올라서서 넓은 억새밭을 바라보니 지난여름 그 푸르던 억새밭이 지금은 하얗게 은색의 벌판으로 변해있다.


햇빛에 반짝이며 바람에 살랑거리는 억새꽃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그 사이에 못 보던 조형 예술 작품들이 군데군데 많이 서 있다.

친구들은 파란 하늘과 구름과 억새와 예술품사이에 여고생들처럼 삼삼오오 나란히 서서 호호거리며 사진 찍기에 바쁘다. 옆에서는 정원박람회도 열리고 있다.

하늘공원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노을공원의  지역난방공사 굴뚝을 바라보며 걸어가니 한옆에 분홍색 코스모스 단지가 넓게  펼쳐진다. 작년에는 이 자리에 붉은 댑싸리가 가득했었고 그전에는 해바라기와 핑크뮐리도 만발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해마다 다른 꽃이 심겨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 주니 가을이면 하늘공원을 지나칠 수 없다.

이럴 때 도시락을 가져왔으면 좀 더 여유 있게 시간을 갖고 억새와 코스모스를 즐길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내려가는 길은 숲이 좋은 서쪽 계단길을 택한다. 계단이 425개나 되어 약간 겁이 나기도 했으나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많아서 모두 무사히 내려간다.


계단을 내려와서 왼쪽으로 하늘공원의 남쪽 한강변 메타세쿼이아길로 들어선다. "시인의 길"이라고 전에 못 보던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이 아마 이 길을 근래에 새로 정비했나 보다. 꽃무릇도 많이 심은 것 같다. 꽃무릇은 이제 꽃은 지고 잎만 남아서 줄지어  선 키 큰 나무들 아래의 긴 화단을 덮고 있다. 내년에는 9 월에 꽃무릇 필 때면 멀리 가지 말고 이리 와야겠다고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 메타세쿼이아길은 서울의 걷고 싶은 길,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소문이 나 있고   실제로도 그렇지만 오늘은 유감스럽게도 "옥에 티"? 가 드러난다. 다름 아니라 산책길 도중에 바람결에 실려와서 콧속으로 스며드는 향기롭지 못한 역한 냄새 때문이다. 갑자기 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기분이다. 이 냄새의 원인은 근처에 있는  지역난방공사의 폐기물소각장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일까?  그 연기의 뒤처리가 충분히 되지 않아서일까?  하여튼 억새와 코스모스에 취하고  또 메타세쿼이아길 초입에서 크게 받았던 감동이 반감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점심때가 되니 하늘공원을 떠나 다시 월드컵경기장으로 가서  그 안의 쇼핑몰에서 식당을 찾는다.

운 좋게 오늘 생일을 맞은 친구가 쇼핑몰의 이태리 식당에서 한턱낸다고 하니 우리는 좋아라고  친구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그의 건강을 기원하며 즐거운 점심시간을 갖는다.


오늘은 하늘공원을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완전히  한 바퀴 돌고 온 셈이어서 경로가 꽤 길었다. 집에 돌아오니 16000보 넘게 걸었다고 만보계에 뜬다.


2023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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