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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Nov 14. 2023

마성의 고영희 서보름이 팬클럽 회원들에게

보름이의 편지

마성의 고영희 서보름이 팬클럽 회원들에게 고하는 ‘연희 고냥 놀이동산’ 접수기


안녕?

나는 2년 전쯤 이 구역(안산공원관리소 일대)을 주름잡던 마성의 인기냥 보름이야. (aka 야옹이, 고양이 등등)

나를 기억하고 궁금해하고 그리워하고 걱정하는 팬들이 꽤나 많을 거야.

진즉 근황을 알렸어야 했는데 쫌 늦었네. 미얀~


나는 무척 잘 지내고 있어.

2년 전 가을, 노을 보겠다고 온 인간들을 우연히 만나... 라기보다는 내가 먼저 슬그머니 다가간 거. 내 구역이 아는 사람만 아는 노을 맛집이자나?

이 아담하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다정하고 발라당 뒹구는 애굣덩어리한테 그이들도 홀딱 반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맛있는 밥도 챙겨 오고 한참씩 낚시 놀이도 해주곤 했어.

그러다가 몹시 춥고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이 집으로 나를 단짝 안고 내려왔지. 내가 얼어 죽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됐다나? 그럴 리는 없었을 테지만 어쨌든 그날로 고생 끝! 행복 시작! 등 따습고 배부르길래 그대로 눌러앉아 살게 됐지 머.


나를 보겠다고 매일 이런저런 별식 챙겨주고 보름이라는 예쁜 이름 지어 불러준 언니와 아저씨, 할머니, 꼭 안아주던 할아버지가 가끔씩 그립고, 데친 스팸과 삶은 문어나 달걀, 촉촉한 빵도 먹고 싶지만 지금 집사들도 꽤나 요것조것 갖다 바치며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있어서 살 만해.


풀숲을 휘젓고 다니며 벌레니 새들이니 실컷 쫓거나, 커다란 나무를 단숨에 오르던 자유와 언덕에 불어오던 봄바람, 매일 다른 빛깔의 노을 구경, 이맘때 느끼던 낙엽 냄새나 바스락 부서지던 그 촉감도 문득문득 떠오르지만 사철 햇볕 잘 드는 따뜻하고 시원한 집에서 아무 걱정 없이 낮잠 푹 자고, 내 전용 타워에서 느긋하게 털 고르고, 이 집에 밥 먹으러 오는 새들 쫓기도 하고, 먼저 와서 살고 있던 고영희 언니들 사냥도 하고, 때맞춰 대령하는 맛난 밥 먹으며 사는 것도 참 행복해.

여기엔 장난감도 많고 높이 올라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도 많다? 신날 땐 전속력으로 우다다다 오르내릴 수도 있어서 꼭 놀이동산 같아. 그뿐이 아냐. 쏙 들어가서 실컷 낮잠을 잘 수 있는 동굴도 아주 많아서 기분 따라 옮겨 다니는 편.

나랑 똑같이 생긴 세 언니는 덩치는 산만 해도 온실 속 화초들이야. 쪼끄매도 조약돌처럼 다부진 몸매로 제법 거칠게 살아온 내가 바~로 짱 먹었지. 나 멋지지? 후훗. 첨엔 좀 서먹했지만 이젠 술래잡기도 하고 가끔 내키면 서로 핥아주거나 엉덩이 붙이고 자기도 해.

물론 예전에는 몰랐던 양치질이나 눈 관리, 귀 청소, 발톱 손질의 세계 따위는 넘넘 시러!

병원에 끌려가서 첨 보는 인간들이 꽉 붙들고 눈이니 이빨이니 귓속 들여다보는 건 또 어떻고? 그래도 나한테 꼭 필요한 일이라니까 어쩔 수 없이 이젠 적응 완료!

내가 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던 모양인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

아! 꽤 좋은 것도 있다. 집사 무릎에 누워서 털 손질이랑 쓰담쓰담받을 땐 행복이 물 밀듯 밀려와 골골송이 절로 나온다니깐.


다들 걱정할 거라며 내 소식지를 만들어야겠다던 집사들이 말만 꺼내곤 어느덧 2년이 다 돼가네. 내가 보기엔 좀 게으른 것 같기도 해. 그래서 그냥 내가 뚝딱 만들기로 했어. 팬 서비스 차원이지.


나를 만나 이뻐해 주고 맛난 음식들 갖다주고 사랑해 주고 기억해 주는 모든 팬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 전해.

덕분에 덥고 춥고 축축하고 배고프고 조금은 무서운 곳에서도 무사하게, 즐겁게, 쫄쫄 배곯지 않고 지낼 수 있었어.


나는 정말로 잘살고 있으니 이제 내 걱정일랑 말고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길 바래.

모두들 나에게 그랬듯 다른 고양이들에게도, 또 다른 동물 친구들에게도 다정하고 상냥한 인간이 되어주기를 부탁해.


아! 집사들이 빨리 소식 전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걱정시켜 미안하다고 꼭 전해달래. 쳇! 숟가락 얹기는...


그럼 이만 빠잉~!


2023년 11월 13일 하산 23개월 만에 쓰다.


(대필자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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