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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Dec 09. 2023

기적을 만드는 고양이, 서연희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은 서연희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서연희 씨는 내가 앉았던 의자를 내놓으라며 참으로 예쁘고 다소곳하게 앉아 예의 그 고양이의 음성으로, 그러나 힘 있고 단호하게 ‘냐아~’합니다. 그래서 벌떡 일어나면 냉큼 그 자리에 올라앉지요. 그러나 서연희 씨의 마음은 쉽게 바뀝니다. 잠깐 앉았다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얼른 또 자리를 옮기지요. 이번에는 의자를 바꾸려고 방바닥에 내려놓은 가방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냄새를 맡고는 안심했는지, 이내 엄마가 글을 쓰는 책상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창턱으로 올라가 앉습니다. 그 창턱에는 고양이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고양이 재미연구소’ 소장인 나의 파트너가 올려놓은 골판지 스크래쳐 상자가 있지요.


서연희 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15년 봄 5월 27일입니다. 아직은 쌀쌀했던 5월 26일 밤, 나와 나의 파트너가 지금의 집으로 이사한 지 한 달이 되는 날 우리는 밤 산책을 나섰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기 고양이의 우는 소리. 함께 있던 친구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언니들이 평생 책임질 거 아니면 아는 척도 하지 말아요.”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자신이 없었으니까요. 그 밤이 지나고 다음날 밤, 우리는 또 밤 산책을 나섰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들려오던 같은 목소리. 왠지 쉰듯했습니다. 파트너가 짧게 말했습니다. “잡아” 나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리가 들려오는 화단 수풀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 찾아낸 작은 뒤통수. 아무것도 없는 관목들 사이에서 이틀을 보냈을 텐데도 이 작은 생명은 너무나 재빨랐습니다. 화단 위아래를 오르내리면서 요 뒤통수를 뒤쫓았지만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관목숲 옆 주차장에 세워진 트럭 위로 올라 요리조리 도망 다니던 아이를 손가락 두 개로 걸어 잡았습니다. “잡았어!” 두 사람의 박진감 넘치는 봄밤의 첫 포획(?) 작전은 이렇게 성공을 했죠.


아이를 잡아 안고 보니 눈 한쪽은 눈곱으로 말라붙어 있었고, 손바닥 위에 가뿐히 올려질 정도로 말라있었습니다. 이 작은 걸 안고 친구가 추천한 동물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이 아이 이름은 서연희야. 서대문구 연희동. 서연희.” 아이를 안고 차로 걸어가던 길이었는지, 아니면 차 안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이미 이름을 짓고 있었습니다. “망했다. 이름을 지으면 안 되는데” 중얼거렸지만, 이미 그 아이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아이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결론을 이미 내리고 있었습니다.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 나의 고양이 알레르기, 파트너의 청결 강박. 그리고 무엇보다 한 생명을 평생 책임진다는 무거운 책임감. 무엇보다 파트너는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개파...), 나에게는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던 고양이들에 대한 부채감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꿈에 그리던 묘연인 서연희와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나에게는 나만의 반려동물 입양원칙이 있었습니다. 반려동물을 만난다면, 첫째 우연히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사람이 반려동물을 선택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니까, 그들의 생각, 의지를 파악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이 나를 선택할 때만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어렸으면 했습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하던 시절, 성묘, 성견이 되어 단체로 오게 되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어찌어찌 입양을 가도 대개는 반려인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파양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동물의 역사를 모르고, 경험을 모르니 반려인들은 인간 중심으로 동물을 길들이려고 하고 그런 과정에서 갈등이 벌어지거나, 실망을 하게 되는 것이었지요. 나는 그래서 동물의 가장 처음부터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셋째 암컷이라면 좋겠다. 음... 이것은 정말 설명할 수 없는 조금은 부끄럽기도 한 나의 원칙이었습니다. 아니 그렇지만, 뭔가 같은 성별이라면 서로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니 그래봤자 다 변명이네요. 죄송합니다. ㅎ 하늘이 주신대로 받아야지요. 서연희 씨는 이 세 가지 조건 중 두 가지에 딱 들어맞는 존재였습니다. 동물병원에서 수컷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파트너와 나는 연희에게 더 좋은 입양처를 찾아주자는 합의를 했으니 나는 입양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나는 매일매일 울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바라고 바라던 존재가 나타났는데, 왜 안 되는 거냐며, 연희를 안고 울면 연희는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면서 같이 울며 내 볼을 쓰다듬었습니다. 마치 내 마음을 아는 듯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아주 까다롭게 입양가족을 찾았습니다. 서류전형에 면접심사까지, 마지막 가정방문을 끝으로 서연희는 우리 곁을 떠나 새 가정으로 갔습니다. 연희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텅 빈, 적막한, 공간에서 나는 오열하며 쓰러졌습니다. 마치 삼류 영화처럼요. “내가 내일 왜 일어나야 하는지 모르겠어.” 파트너와 나는 연희의 새 가족에게 길고 긴 문자를 보냈습니다. ‘... 연희가 없으면 안 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연희는 우리 두 사람의 금쪽같은 새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연희는 암컷이었다는 사실.


우리의 15년 파트너십은 연희의 등장으로 세 번째 스테이지를 맞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연희에게 구애하느라 서로를 볼 사이가 없었습니다. 둘 밖에 모르던 다정한 잉꼬부부에게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마치 서로에게 다른 상대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약간은 서먹하게 그 흔한, 가족끼리는 그러는 거 아니야, 하는... 하하하!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우리도 몰랐습니다. 우리 스킨십 상대는 연희, 대화의 상대도 연희, 잘 보이고 싶은 상대도 연희가 되었습니다. 연희가 너무 좋아서, 그 사랑이 너무 깊어서 하루는 연희에게, ‘연희야 엄마랑 결혼해 줘.’라고 했습니다. 연희의 대답은 듣지 못했지요.


절대로 연희만이 우리 삶에 함께하는 고양이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또 다른 고양이를 부른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 집에도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연희가 원치 않았던 동생들 민희, 진희가 생겼고, 그 동생들 때문에 연희가 얼마나 예민하고 까칠하고, 독점욕이 강한 아이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진희를 보내야 하는 슬픈 일도 있었고, 작년에는 막둥이 준희가 오게 되었습니다. 민희, 진희, 준희의 이야기를 쓰자면 ‘24년생 할머니의 육이오 이야기’급 분량이 나오겠지만, 다음을 기약해 보죠.


연희는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었습니다, 뭐 사실 너무 많은 선물을 주어서 일일이 다 말로 꼽을 수도 없지요. 우선 마음의 평화를 주었습니다. 지난 두 정권 동안 내 마음은 황폐한 사막 같았습니다. 아니 불이 활활 타오르는 아마존 삼림 같았습니다. 그러나 연희 얼굴만 보면 내 마음은 사랑과 평화로 가득 차올랐습니다. 분노와 실망감, 무기력함을 해소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일생 한 번도 돈을 잘 벌고 싶다거나,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연희 덕에 그렇게 살고 싶어 졌습니다. 늘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던, 그만 살고 싶다, 삶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지게 해 주었습니다. 놀랍게도 연희는 우리 커플에게 지역에 기반한 공동체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동네고양이를 돌보는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었고, 거기서 만난 여성, 청년, 비혼,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느슨하지만 든든한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 커플은 이제 동네에 부유하는 이질적인 레즈비언들이 아니라 동네고양이들, 동네여성들과 함께하고 서로 돌보는 그런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발견된 작은 생명 서연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기적을 만들어내는 위대한 존재가 아닙니까? 고양이는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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