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4월의 산책코스
서울숲은 단풍명소나 벚꽃명소라고 소문이 나 있지만 봄철에 때를 못 맞춰서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없다 해도 그리 섭섭해하고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 화려한 튤립 정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숲은 만들어진 지 20년이 채 안 되는 오래된 공원은 아니어도 키 큰 나무들을 많이 심어 도심 속에서도 숲 속 기분을 느끼게 하는 곳이라 우리가 자주 산책하는 곳이다. 게다가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나무들 외에도 산책길 옆으로 갖가지 들풀이나 야생화들이 피어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올봄 서울의 매화, 목련, 개나리, 진달래 그리고 벚꽃이 피고 지는 것을 매주 보았으니 오늘은 서울숲에 튤립을 보러 가기로 했다. 서울숲은 지하철역에서 가까워 접근성이 아주 좋다. 군마상 앞에서 만나기로 한다.
군마상은 예전에 이 자리가 경마장이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조형물이다. 힘차게 달리는 말과 기수들의 청동상이 우리를 반긴다. 서울숲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군마상을 지나서 직사각형연못을 따라 늘어선 가로수길을 통과하면 튤립꽃밭이 시작된다. 몇 년 전 여기서 색색가지 튤립이 가득 피어있는 것을 보고 황홀했던 기억이 난다. 유럽의 공원에서만 보았던 튤립을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많이 볼 수 있다니! 오늘은 처음의 그 감격은 다소 감소되었지만 튤립은 여전히 아름답게 피어있다. 다만 최근에 비가 오지 않고 날이 가물어서 군데군데 마른땅이 보여 안타깝다. 그러나 호숫가에 먼저 피었다가 지고 있는 수선화와 튤립과 신록이 함께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이룬다. 산철쭉 핀 실개천을 따라 생태습지원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면 소나무숲길로 이어지고 거기서 나오면 넓은 잔디마당이 펼쳐진다. 여기저기 피크닉테이블이 적지 않은 것 같으나 우리 인원에 맞게 빈 테이블이 없다. 평일이어서 가족모임보다는 직장인들과 일반친구들 모임이 많은 것 같다. 2년 이상의 방역규제가 좀 완화되어 거리 두기가 풀리니 분위기가 한결 자유로워 보인다. 할 수 없이 두 팀으로 나뉘어 꽃잎지고 새잎 푸른 살구나무 그늘에서 점심을 먹는다. 오늘은 서울숲옆에 사는 친구가 자기 집 근처에 왔다고 김밥과 샌드위치를 준비해 와서 다른 친구들이 가져온 후식과 음료와 함께 푸짐한 한상이 되었다.
점심이 조금 일찍 끝나 커피를 마신 후에는 사과꽃이 피었나 보려고 사과나무길로 간다. 사과나무길은 군마상에서 서쪽으로 무지개다리 너머에 있다. 가을에 열매를 보기 위해 키우는 사과나무는 이미 가지치기를 해서 활짝 핀 꽃을 많이 볼 수 없으나 관상용으로 남겨둔 몇몇 나무에서는 사과꽃이 하얗게 빛나면서 탐스럽게 피어있다. 봄에 취해 사과나무길 언덕을 거닐면서 친구들은 어렸을 적 불렀던 옛날 동요까지 끌어내어 흥얼거린다. "동무들아 나오라 봄마중 가자/ 나물 캐러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꽃다지 모두 캐보자/ 종달이도 봄이라 노래하잔다~" 한 친구가 노래하다 가사를 잊으면 뒤의 친구가 이어가며 끝까지 부르며 아이들처럼 기뻐한다.
오늘의 꽃들 중 주인공은 단연 튤립과 사과꽃이었지만 그 외에도 길가에는 겹벚꽃, 철쭉을 비롯해 더 많은 꽃들과 야생화들이 피어있지만 일일이 그 이름을 불러줄 수 없으니 미안할 지경이다. 꽃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어 남기니 다행이다. 그 덕분에 카톡방 갤러리는 현란한 봄꽃사진으로 가득 차서 기다리는 카톡방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 준다. 산책에 참가하지는 못하지만 사진을 감상하며 오가는 대화를 즐기는 백여 명의 관객들이다.
(2022년 4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