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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Feb 16. 2024

창경궁과 인사동

오늘은 날씨가 맑고 푸근하다. 며칠 전에 입춘도 지났으니 이대로 추위가 물러갔으면 좋겠다.

오래간만에 창경궁에서 걷고 인사동에 가서 전시회도 보려고 한다. 친구인 판화가 이영애 작가의 전시회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혜화역 4번 지하철 출구에서 친구들을 만나서 명륜동을 지나 창경궁 돌담을 끼고 걸어서 정문인 홍화문에 이른다. 홍화문 앞에는 시내버스를 타고 온 친구 하나가 벌써 기다리고 서 있다.

창경궁과 이웃에 있는 창덕궁은 우리가 좋아하는 산책코스로 1년에 몇 번은 찾는 곳이다. 봄에는  매화꽃을 보러 가고 가을에는 단풍을 구경하러 간다. 봄이나 가을에는 보통 안국역에서 출발하여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을 통과하여 궁궐의 전각 앞을 지나서 낙선재 옆 함양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들어가 창경궁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나오지만 오늘은 그 반대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앞에서 시작한다.

창경궁에서 걷겠다고 모인  친구들은  모두 열한 명이다.  오늘은 홍화문에서 출발해서  명정전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오른쪽 후원으로 들어선다. 왼쪽으로 가면 옥류천이고 종묘 쪽으로 이어지는 옥류천변에는 봄꽃이 아름답게 필 것이다. 반대로 오른쪽 길은 춘당지와 대온실로 가는 길로 연못 옆으로 나무가 우거진 산책길이 이어진다. 춘당지는 가을에 단풍으로도 유명해서 우리가 해마다 늦가을에 찾아오는 곳이다. 이 숲길에는 서울에 몇 그루 없다는 희귀하고 오래된 백송나무도 서 있다. 자작나무만 줄기가 흰색인 줄 알았는데 백송나무의 줄기도 흰색이어서 신기하다. 자주 걷는 길인데도 오늘은 반대방향으로 걸으니 보이는 풍경이 새롭고 색다르게 보인다. 몇 년 전만 해도 춘당지 연못에는 원앙새들이 떠다니며  사진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는데 오늘은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좀 더 따뜻해져야 나오려나?

연못이 끝나니 자그마한 유럽식 정원이 펼쳐지고 그 뒤에 흰색 유리 건물이 파란 하늘(다행히 오늘 하늘이  맑다!)을 배경으로 환하게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창경궁 대온실이다. 1907년 대한제국 말기에 창경궁이 일반대중을 위한 공원으로 변하 면서 동물원과 함께 세워진 실내식물원이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온실인 것이다. 온실 안에 들어서면 대온실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규모가 작고 아담하다. 우리가 최근에 생긴 대규모의 현대적인 온실을 몇군데 다녀보고 온 다음이라 그런 인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다.

대형 온실에서 본 것과 내용도 다르다. 이곳에는 분재 식물이 많이 보인다. 외부의 자연을 실내로 끌어 들여와서 화분에다 작은 사이즈로 축소하여 감상하려던 일본인들의 취향에 맞게 가꾸어진 실내정원이다. 벌써 매화, 동백, 영춘화, 명자화등 여러가지 봄꽃들이   작은 화분에서 앙증맞고 예쁘게 피어있다. 대형화분에 심겨진 키가  큰 동백나무도 있는데  활짝 핀 동백꽃과 탐스럽게 열린 황금색 귤을 보니 이제 밖의 자연에도 곧 봄이 오고 꽃도 피어 나겠지하는 희망이 생긴다.

대온실을 나와서 춘당지 연못가를 돌아 창덕궁과 인접한 성종 태실 앞 숲길을 따라가다가 창덕궁 입구인 함양문을 통과한다. 함양문 앞과 낙선재는 봄철에 매화 필 때 또 와야 하니 그냥 지나가고 창덕궁의 옆문으로 나가서 인사동 방향으로 간다.

오늘의 첫번째 일정인 창경궁 산책을 마치고 두번째 전시회관람을 위해 전시회가 열리는 인사동 통인화랑으로 향한다. 화랑에 도착하니 이영애작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전시회는 “새겨진 기억”이라는 주제로, 판화로 새겨진 여러 기억들이 모여 이야기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런 기획의도에 맞게 한국 대표판화작가 12인의 작품들이 멋지게 전시되어 있다. 우리의 친구 이영애작가도 이 대표작가 중의 하나로 그동안 활동이  많았는데 해마다 전시회가 열릴때마다 우리 모임을 초대해 주었다. 우리는 그때마다 전시장에 가서 함께 미술감상을 즐기며 작가친구를 자랑스럽게 여기곤 했다.

통인화랑으로 직접 온 친구들도 여럿 있는데 작가는 우리 친구들을 모두 점심에도 초대한다. 전시회에 초대해준 것도 고마운데. 그 덕분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서 서로 반가워 하기도 한다. 게다가 마침 내일모레가 설날이어서 인사동의 붐비는 관광객들과 함께 들뜬 명절 분위기에도 편승한다. 또 우리의 솜씨좋은 친구 Y는 집에서 손수 튀겨온 김부각, 누룽지튀김, 말린고추튀김을 한봉지씩 담아서 구정선물이라면서 우리 모두에게  선물한다. 선물 받은 친구들이 좋아서 입이 벌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오늘은 산책 외에 전시회관람이라는 문화행사가 추가되어 평소보다 즐거움을 두배로 얻은 날이다. 어떤 친구는 오늘 자신의 영육이 강건해짐을  느낀다나!

대온실과 전시장에서 많이 걷지 않은 것 같았어도 집에 오니 거의 만보는 걸었다.


20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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