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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r 10. 2024

서울 어린이대공원

지난주 과천 서울대공원의 식물원에 다녀오면서 그곳이 서울의 창경궁 대온실 다음으로 제일 오래된 식물원인줄 알았다. 그런데 집에 오면서  생각해 보니 그전에 서울에도 대공원이 있었고 식물원도 있었다는 사실이 문득 떠 올랐다. (이번 겨울에는 실내식물원 탐방을 집중적으로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바로 아차산 자락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이 생각난 것이다.


이 대공원은 서울에서 제일 처음 생긴 놀이공원(1973년 개장)으로 여기에 놀이동산뿐만 아니라 동물원과 식물원도 있다. 창경궁 동물원이 서울에 하나밖에 없을 때 새로 생긴 놀이공원이라고 전국적으로  유명해져서 온 나라에서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이었다. 그러나 개장 당시에 우리 세대의 자녀들은 아직 갓난이들이 많아서 동물원이나 놀이공원을 즐길 수 있는 나이들이 아니었다. 10년쯤 지나서야 잠실에 살던 친구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이 공원에 자주  놀러 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한동안 우리는 어린이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시내에 가까이 있어도 거의 오지 않았던 공원이다. 건너편에 있는 아차산 생태공원에는 가끔 갔으면서도.


어린이대공원에 간다고 단톡방에 공지하니 동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한때 어린 자녀들과의 추억 때문일까, 아차산역 4번 출구에 모인 친구들은 열여섯 명이나 된다.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어린이대공원 후문 진입로에 들어서니 넓은 길 옆에 키 큰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다. 어린이대공원은 밤벚꽃놀이로도 유명하다던데 이 길은 가을에 단풍이 더 좋은지  가을단풍길이라는 별칭이 있다.

길 왼편으로는 몇 년 전 겨울에 발레 “호두까기 인형” 공연을 보았던 유니버설아트센터와 선화예고가 보인다. 넓은 길 앞으로 팔각당이 보이고 곧장 더  가면 정문이 나올 테지만 우리는 왼편 구의문쪽으로 보이는 숲 속 산책길로 들어선다.

이 산책길에는 어린이대공원이 어린이들만의 놀이터와 소풍지, 사생대회 장소가 아니라고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이제 많은 어른들이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근처에 사는 주민들인가 보다. 걷는 도중에 만나는 숲 속의 나무들이 꽤 나이가 들고 오래되어 보인다.


알고 보니 이 공원의 시작은 거의 백 년 전이었다.

 1920년대 말에 이곳에 “경성골프구락부”라는 골프장이 개장되었고 해방 후에는 “서울컨트리구락부"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되다가 1973년에 비로소 어린이 대공원으로 개장한 것이다. 그리고 보니 공원 숲 속에는 오래되어 굵은  나무들이 꽤 많이 보인다.  

우리는 숲 속 산책로를 반쯤  걷다가 식물원을 찾아서 들어간다. 비가 오지만 이슬비여서 조금씩 맞으면서 걷기는 괜찮으나 바람이 차서 온몸이 으슬으슬해지므로  따스한 곳이 반갑다.

거의 50년 전에 세워진 이 식물원은 최근에 본 현대적인 식물원들에 비하면 비교적 소박하다. 다육식물관과 관엽식물관, 분재식물관, 야생화관으로 구분하여 전시되고 있으나 야생화관과 분재관은  문이 닫혀서 들어갈 수 없고 다육식물관에는 꽃기린 꽃이 빨갛게 피어서 회색빛 선인장을 화사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층에 전시된 수경재배 식물실까지 다 돌아보아도 식물원이 별로 크지 않아서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  식물원을 나오니 식물원 카페테리아, 푸드 코트라고 쓰여 있다. 입구는 좁고 어둡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밝고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창밖으로 야외 벤치가 늘어선 정원도 보인다. 식당에는 아직 사람들이 안 보이고 빈자리들이 많아서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다. 돈가스, 우동, 볶음밥  정도 먹을 수 있는 식당이지만 모두 불만 없이 먹는다.  

점심 후에는 식당 옆에 있는 동물원으로 들어간다. 지난주에 갔던 과천 대공원 동물원에서는 동물을 몇  마리 보지 못했는데  오늘 어린이대공원 동물원에서는 꽤 여러 동물을 볼 수 있다. 맹수 마을에 들어가니 따스한 양지쪽에서 낮잠을 즐기는 사자부터 표범, 스라소니, 자칼, 흑곰, 여우 등과 코끼리까지 볼 수 있다. 물론 원숭이도 빠지지 않는다. 여러  친구들이 처음 와 본다면서  감탄하며  동물원을 지나면 놀이기구가 늘어선 놀이동산도  있다. 비 오는 평일이어서 그런지 놀이동산에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고 한산하다.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어린이대공원에서 아이 같은  노인들이 70년 전의 어린이들처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된다. 돌아가는 길은 둘로 갈라져서  분수 앞에서 두 편으로  나뉘어 헤어지기로 한다. 지하철 7호선이 편하다는 친구들은 정문이  있는 어린이대공원역으로 가고 5호선이 편한 친구들은 후문 쪽 아차산역으로 간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는 계속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한다.


이제 3월인데 다음 주부터는 야외에서 봄꽃 구경을 할 수 있을까?  

오늘도 집에 돌아오니 만 오천보 정도 걸었다.


2024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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