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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r 31. 2024

뚝섬 한강공원의 산수유꽃

나이 들고 보니 세월이 빨리 가는 것이 반갑지 않지만 춥고  지루하고 긴 도시의 회색 겨울을 지내다 보면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시간이 얼른 지나갔으면 하고 바란다.


어느덧 3월 중순이 되었으나 “춘래불사춘"이라 했던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아서 거실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봄볕이 따스하고 아주 유혹적이기는  하지만 밖으로 나가면 꽃샘추위와 쌀쌀한 봄바람 때문에 패딩 점퍼와 목도리를 아직 벗을 수가 없다.

그래도 봄을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잊지 않고 피어 주는 자연의 봄꽃을 기대하며 봄맞이 한번 해보려고 오늘은 뚝섬 한강공원에서 걷기로 한다. 봄에는 뚝섬 한강공원에 산수유꽃과 매화가 많이 핀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는 봄에 제일 먼저 피는 꽃이 개나리, 진달래만 있는 줄 알았고 이른 봄 멀리서 노란 꽃을 보면 무조건 개나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노년에 이르러서 비로소 남쪽의 구례나 하동에서 들려오는 산수유 축제, 매화축제의 소식을 듣고 개나리 보다 일찍 피는 봄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남쪽에서만 피던 산수유꽃이나 매화를 서울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게 아닌가?


지하철 7호선 자양역(얼마 전까지만 해도 뚝섬유원지역이었다)에 모인 친구들이 모두 열일곱 명이나 된다. 화창한 봄볕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나 보다.

봄날씨에 어울리게 봄맞이하러 나온 친구들의 의상도 색색가지로 다채롭다.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왔다고 아주 좋아하는 친구도 있다.


자양역은 청담대교 북단에 자리 잡고 있고 3번 출구에서 나오면 청담대교 아래 옆으로 길게 누운 자벌레 형상의 특이한 은색 구조물이  보인다. 그 내부는 평소에는 전시관이나 도서관으로 이용되는 모양이나 당분간 휴관이라고 한다.


오늘은 자양역에서 서쪽으로 영동대교 방향으로 강변을  따라 걷는데 이곳에는 예전에 뚝섬나루가 있었던 곳이다. 영동대교(1973년 준공)가 세워지기 전에는 한강 건너편에 있는 절 봉은사로 가려면 여기 뚝섬나루에서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그 나루터가 지금의 유람선 선착장 자리인가 보다.

우리는 영동대교 직전에서 뚝섬 나루마당이라는 곳까지 갔다가 되돌아서 강변을 따라 잠실대교 방향으로 걷는다. 마침 날씨가 좋아서 강변산책길에서 보는 하늘과 강물이 파란색으로 아름답지만 멀리 보이는 잠실대교와 종합운동장과 롯데타워는 미세먼지에 가려서 윤곽이 흐릿하니 매우 아쉽다.


계속해서 강변길을 한없이 따라가면 구리, 양평까지 가게 될  것이나 우리는 잠실대교가  보이는 곳에서 왼편의 강둑으로 올라간다.

여기에는  캠핑장과 장미원, 자연학습장이 있는데, 이 장미원에서 만발한  장미를 우리는 작년 5월에 와서 보고 간 적이 있다. 지금 장미밭은 황량하지만 한가운데 서있는 유럽식 분수 (지금은 아직 물이 흐르지 않음)와 지난여름 덩굴장미가 휘감겼던 아치형 터널을 보고 친구들은 작년에 뚝섬에 왔던 때가 기억난다고 말한다.

장미원을 지나면 자연 학습장인데 여기에는 큰 나무들이 많이 심겨 있어 마치 울창한 숲 같다.

숲길을 걷다가 갑자기 친구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다. 드디어 노란 산수유나무 꽃을 발견한 것이다. 산수유나무들은 꽤 오래된 듯 키도 크고 줄기도 굵다. 꽃은 개화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활짝 핀 상태는 아니지만 나무 전체를 노란색으로 물들여서 주변을 환하게 만들며 우리를 반기고 있다. 산수유 꽃나무 아래서 우리 사진사들은 사진 모델들에게 이리 서봐라, 저리 서봐라, 손을 올려봐라, 시선을 올려라, 지시하면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명작이 나오려나 보다.


산수유꽃을 보고 자연학습장의 고불고불한 숲길을 돌아 나와 다시 장미원으로 오니 빈 정자가 하나 보여 여기서 쉬어가기로 한다. 그런데 이곳에  많다는 매화나무가 어디 있는지  꽃이 아직 안  피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안내도에도 안 나타나서 가까이 있는 장미밭에서 정비 작업을 하고 있는 직원에게 매화단지가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지만, 자신은 이곳에 근무한 지 열흘도 안 되어 잘 모른단다. 이런!  이 공원은 장미원과 여름의 물놀이장에만 집중하나 보다. 우리는 새로운  매화 단지를 보려고 기대하고 왔는데 말이다. 다른 매화밭을 찾아봐야겠다. 이미 서울의 매화 명소라는 데는 두루 다녀보았으니 말이다. 봉은사, 청계천, 창덕궁, 용산의 국립박물관 후원 등등.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가 장미원 앞에 있는 아담한 편백나무숲을 통과하며 삼림욕 하는 기분도 좀 내본다. 여기서도 맨발 걷기  하는 사람들이 이따금 보인다. 아직 발이 시릴 텐데?


편백나무숲에서 나오면 다시 넓은 잔디 마당이다. 잔디마당은 지금은 비어있지만 이제 날이 더 따뜻해지면 이 잔디마당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놀겠지? 많은 아이들이 북적거렸으면 좋겠는데..

우리는 공원을 통과하여 강변을 따라 좀 더 걷다가 점심시간에 맞추어서 오리보트 선착장 옆으로 작년에 갔던 폐여객선을 개조한 수상 식당 안으로 들어간다. 마침 그때  우리가 앉았던 넓은 테이블도 비어 있어서 열일곱 명이 모두 한자리에 앉을 수 있으니 환호가 저절로 나온다. 메뉴도 그때와 같이 튀김닭, 불고기덮밥, 낙지덮밥 그리고 맥주도 곁들인다. 둥근 선창 밖으로는 오리배가 지나가는 것도 보인다.


오늘은 기대했던 매화를 못 봐서 약간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우리가 좀 성급했나?) 올봄에 처음 본 산수유꽃과 함께 봄맞이 산책을 잘하고 간다. 모두 만족하며  자양역으로 다시 가서 열차에 오른다.


오늘도 집에 오니 만이천 보 이상 걸었다.


2024년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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