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작년과 재작년 여름에 가보았던 경인아라뱃길에는 아라폭포와 아라마루 전망대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근처에는 매화동산도 있었다.
작년에 이 근처를 지도에서 찾다 보니 매화동산이라는 곳이 있어 봄에 매화꽃 필 때면 한번 찾아와 보리라고 점찍어 두었었다. 그런데 이삼일 전 집에서 가까운 청계천과 용산 가족공원, 그리고 박물관 정원을 산책하며 벌써 매화가 활짝 피고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길래 이제 정말 봄이 왔나 보다 생각하고 경인 아라뱃길 매화동산에도 매화가 피었으리라고 기대했다.
지난 며칠 동안 강풍이 불고 꽃샘추위가 심하더니 오늘은 바람이 좀 잔잔해지고 날씨도 화창하다. 그래도 꽃샘추위에 겁을 먹었는지 아니면 거리가 너무 멀어서였는지 참가 신청은 열한 명이 했는데 검암역에 모인 친구는 아홉 명이다.
공항철도 검암역 1번 출구 앞 광장으로 나와서 시천교 방향으로 두 번 좌회전하여 경인아라뱃길의 시천나루터로 간다. 이곳에는 경인 운하를 운행하는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데 이 선착장을 지나면 강변에 가족소풍마당이 나오고 수상무대도 있다. 여름에는 여기서 공연도 열리나 보다.
계양대교가 있는 서울 쪽으로 좀 더 걸어가니 매화동산이라고 커다란 표지석이 보인다. 매화동산 왼쪽에는 아라뱃길의 강물이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인천공항고속도로가 나란히 달리고 있다.
경인아라뱃길은 서울 행주대교에서부터 인천 서해바다로 이어지는 운하이다. 한강과 서해를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려고 시도는 고려시대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까지 있었다고 하나 성사되지 못했다가 2012년에야 비로소 운하가 완공되었다고 한다. 일명 아라천이라고도 하는 이 뱃길이 아직 경제적으로는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지만 스포츠나 레저 관광을 위해 개발을 잘한다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전망 좋은 강변을 따라 자전거길이나 산책길은 잘 만들어져 있으나 이쪽 강변에서 저쪽 강변으로 쉽게 자유롭게 건너 다닐 수 없고(보행자가) 아직 식당이나 카페 등 편의시설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매화동산 입구의 표지석을 지나니 길가에 매화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그러나 기대하던 매화꽃은 아직 몇 송이 피어있지 않고 꽃망울만 금세 터질 듯 부풀어 있다. 지난주에 뚝섬에서 많이 보았던 산수유나무도 여기는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다. 역시 이곳은 서울 시내보다 서쪽이므로 서북풍이 강해서 기온이 아직 낮은가 보다. 서울의 공원에는 지금 매화가 한창인데 이곳은 다음 주나 되어야 만개한 매화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친구는 다음 주에 매화 보러 또 여기 오자고 하지만 그때면 여기저기서 개나리, 진달래등이 일제히 피어날 테니 갈곳 정하기가 쉽지 않겠다.
매화동산 안에는 전통한옥의 돌담과 문이 세워져 있고 담장 안에는 정자, 그리고 담장밖에는 옹기들이 줄줄이 늘어선 장독대도 있다. 매실을 담가두기 위한 것이란다. 운치 있는 한옥담장 안에는 대나무숲도 보인다. 경인아라뱃길이 조성되기 전 이곳은 시천동이라는 마을이었고 이 마을에서 20세기에 중요한 서예가 유희강 선생이 탄생하였다고 기념판이 서 있다.
매화동산을 지나 계속해서 안개협곡공원이라는 곳까지 걸어간다. 강건너편으로 우리가 작년 여름에 가 보았던 아라마루 전망대와 아라폭포가 보이지만 아직 가동을 시작하지 않아서 인공폭포에서 물은 흐르지 않는다. 산책로 도중에서 왼쪽 강변으로 내려가 되돌아가고 싶지만 강변으로는 내려가는 길이 없다. 할 수 없이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다시 매화동산을 지나서 시천가람터에 이른다. 점심을 먹으려면 강을 건너가야 하는데 강 건너편에 메밀면옥이라는 음식점 간판이 하나 보이고 2년 전 우리가 들어갔던 콩비지찌개 집은 보이지 않는다.
일단 강을 건너려면 눈앞에 보이는 높은 거대한 시천교로 건너야 하는데 그 아래에 가니 대교로 오르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다리에 올라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보니 경인 아라뱃길이 환히 트이고 서울 쪽에서 오는 넓은 물길과 주변풍경이 시원하다. 시천교를 건너 마을로 내려가서 얼마 걸어가지 않았는데 재작년에 왔던 비지찌개집이 그대로 있어 반갑기 그지없다. 강건너편에서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때 갔던 카페도 아직 그대로 있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카페에 들어가서는 솜씨 좋은 친구 Y가 새로 개발해서 가지고 왔다면서 집에서 만들어 온 간식을 살짝 내놓는데 열어보니 기가 막히다. 금귤정과와 호두강정, 시중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귀한 디저트이다. 그것을 일일이 앙증맞은 조그만 그릇에 담아 와서 둘러앉은 친구들에게 모두 나누어준다. 친구들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이런 걸 어떻게 만들어 올까? 이걸 받은 우리들은 만든 친구의 사랑과 정성에 그저 감동할 뿐이다.
돌아올 때도 다시 시천교에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너는데 이번에 다리 위에서 보는 풍경은 갈 때와는 다른 인천 방향, 즉 서해바다 쪽 풍경이다. 이번에는 다리에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검암역과 직접 연결이 되어 있어 쉽게 역의 대합실로 들어갈 수 있다. 검암역은 공항철도와 인천선이 만나는 곳이어서 여기서 우리들은 인천행, 서울역 행 두 편으로 나뉘어 헤어진다.
오늘은 매화동산에서 기대하던 활짝 핀 매화꽃을 몇 송이밖에 못 만나서 약간 아쉬웠지만 화창한 날씨에 새로운 장소와 걷기 좋은(계단이 적어서 더욱) 새로운 길을 알게 되었다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집에 돌아오니 만 오천보 넘게 걸었다.
2024년 3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