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벚꽃이 만개했다.
작년에는 벚꽃이 예상보다 일찍 피어서 벚꽃 없이 벚꽃축제가 열렸다고 하고, 올해는 예상보다 늦게 피어 또 벚꽃 없이 벚꽃축제를 지냈다고 뉴스마다 호들갑스럽게 전한다.
그러나 4월에 들어서자마자 며칠 안 돼서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아파트 단지의 가로수길이 갑자기 환해졌다. 이삼일 전만 해도 움츠리고 있던 벚꽃망울이 하룻밤 사이에 터져서 꽃이 활짝 핀 것이다. 앞산에도 하얀 벚꽃나무들이 드문드문 솜사탕처럼 박혀있다.
드디어 오늘 만개한 벚꽃 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은 하남의 덕풍천을 걸으며 벚꽃구경을 하려고 한다.
하남에는 2년 전 여름에 강물을 보며 강변을 걸으면 더위를 좀 잊을까 하고 당정뜰에 가느라고 온 적이 있다. 한 여름이었는데 메타세쿼이아 숲길과 벚나무길을 발견하여 그 그늘 아래를 걸으며 더위를 잠시 잊었다. 그때 벚나무길을 걸으면서 봄이 되면 이 길이 벚꽃길이 되어 환해지리라 생각하고 다음 해 봄을 기다렸다.
그런데 다음 해 봄, 즉 작년 봄에는 벚꽃 개화기가 예상보다 앞당겨졌다. 우리가 벚꽃을 구경하기로 예정했던 4월 첫 주 목요일에는 비 예보가 있었고 전날부터 내리는 비 때문에 벚꽃이 다 떨어져서 헛걸음할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멀리 가야 하는 하남 벚꽃길 산책을 포기했다.
올봄에는 꽃 필 때를 맞출 수 있을까 하고 마음을 조였는데 오늘은 다행히 비는 오지 않는다.
5호선 종점 하남검단산역에서 열네 명이 모였다.
1번 출구에서 나와 직진해서 걸어가니 얼마 가지 않아 덕풍 3교가 보이고 덕풍천이라는 팻말이 서 있다. 이 덕풍천 양쪽 둑길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 벚꽃이 만발하였다. 우리가 오늘은 정말 때를 잘 맞추어 온 것 같다.
남한산성 아래서 발원하여 흘러내려오는 덕풍천은 당정뜰을 지나 한강과 만난다. 당정뜰은 덕풍천 하류와 팔당대교 쪽으로 흐르는 산곡천 하류 사이의 한강변 고수부지를 말하는데 여기에 넓고 길게 벚꽃길이 펼쳐지는데 풍경이 장관이다.
이 벚꽃길이 특히 더 아름다운 이유는 배경이 좋기 때문이다. 탁 트인 들판에 한강 건너편에는 예봉산이, 이쪽 오른편에는 검단산이 우람하게 서서 배경을 이룬다.
벚꽃이 아무리 화사해도 맑은 햇빛과 파란 하늘, 푸른 나무들이 주변에 어울려 있어야 그 아름다움이 더욱 드러난다.
오늘은 미세먼지 때문에 아주 투명하게 맑은 날은 아니라도 햇빛이 좋아서 충분히 밝고 싱싱한 절정기의 벚꽃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다. 그리고 평일이어서 사람들도 붐비지 않아 더욱 좋다. 당정뜰의 연못(여름에는 연꽃이 핀다) 둘레를 따라가는 벚꽃길이 꽤 길어서 덕풍교 아래에서 출발하여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 이상 걸린다.
도중에 전망이 좋은 곳에 앉아서 잠시 쉬어 가고 싶지만 아쉽게도 여럿이 앉을 만한 벤치가 없다.
덕풍교 아래로 다시 가니 체육 시설이 있고 그제야 옆에 정자가 하나가 보인다. 마침 그곳에 좀 전에 힘들다고 갈림길에서 헤어지며 남아서 쉬고 있겠다고 한 친구가 앉아 있다. 이 정자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여기에서 보이는 건너편 강변이 미사리인데 그쪽 강변로에도 하얗게 벚꽃 산책길이 이어지고 있다. 욕심 같아서는 오늘 계속해서 미사경정공원까지도 걸어가고 싶으나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아서 미사리 벚꽃구경은 내년 봄으로 미루기로 한다.
어쨌든 덕풍천을 건너야 2년 전에 갔던 식당 주꾸미집으로 갈 수 있어 우선 덕풍교를 건넌다. 식당에 들어가 대기 번호를 받아보니 40분이나 기다려야 한단다. 꽃놀이하러 온 사람들이 몰려들어 왔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옆에 있는 만두집으로 들어간다. 고맙게도 대기하지 않고 우리 모두 한자리에 앉을 수 있다.
메뉴는 만두전골과 도토리묵, 해물파튀(해물파전의 튀김형태인데 처음 들어보는 메뉴이름이다)로 매우 푸짐하다. 그런데 오늘 오래간만에 나온 친구 H가 자신이 도중에 좀 쉬기는 했지만 일행과 함께 시작과 끝을 같이 했으니까 완주한 거나 다름없다고 완주기념으로 점심을 내겠다고 우기니 정말 못 말리겠다. H의 말이 친구들이 자기 동네에 왔는데 집으로 초대하고 싶지만 그걸 못 하니 점심이라도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인심 좋은 친구 덕에 점심을 배부르게 먹었는데, 솜씨 좋은 친구 Y 가 또 새로운 간식을 만들어 왔다고 후식을 내놓는다! 그저 우와! 하는 환호성만 나올 뿐이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하남시청역으로 가는데 신평로라는 길이 신도시의 대로답게 무척 넓다. 다만 차도만 넓고 인도는 좁아서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가 쉽지 않다. 지난주에 우리가 걸었던 강북의 돌곶이로도 인도가 좁아서 툴툴거리며 걸었는데..
어쨌든 우리는 오늘 따사로운 봄날 바라던 벚꽃길을 실컷 걷고 푸짐한 점심에다 많은 추억 거리를 사진에 담아 올 수 있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인가?
집에 도착하여 보니 만 삼천보 넘게 걸었다.
2024년 4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