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상암동 월드컵공원의 노을공원 모감주꽃길을 가려고 한다.
예전에는 여름이 되면 외갓집 앞마당이나 뒷마당에서 여름에 피는 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채송아, 봉숭아, 분꽃, 백일홍, 달리아, 금잔화, 활련화 등 알록달록한 색깔의 일 년생 꽃들 말이다. 봉숭아 꽃으로 손톱에 물들이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아파트 주변에서 그런 꽃들을 쉽게 볼 수 없으니 그런 꽃을 보려면 멀리 떨어진 공원이나 수목원에 특별히 조성된 화단이나 야생화단지를 큰맘 먹고 찾아가야 한다.
그리고 벚꽃 축제니 유채꽃 축제니 요란한 봄꽃 축제가 끝나면서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볼만한 꽃이 별로 없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예전에는 남도 여행에서만 보던 여름꽃 능소화나 배롱나무꽃(목백일홍)을 이제는 서울의 길가에서도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모감주꽃나무를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4 년 전 여름인가 7월 첫 주에 우리 모임에서는 노을공원을 향해 걷다가 북쪽 입구에서 우연히 샛노란 꽃이 가득 핀 높은 나무들과 꽃길을 만나 신기해서 멈춰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어떤 행인이 이 나무가 모감주꽃나무라고 꽃이름을 알려주며 이 꽃이 지고 나면 가을에는 새까만 열매가 열리는데 이 열매가 단단해서 절에서는 이것으로 염주를 만들어서 이 나무를 일명 염주나무라고도 한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우연히 들어서게 된 모감주꽃길은 환상적이었다. 노을공원의 북측 둘레길은 난지순환로라고 하는데 이 길에는 온통 모감주나무가 가로수로 늘어서 있었다. 그때 마침 모감주꽃이 만개할 때여서 황금색 가로수길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난생처음 보는 황홀한 길이었다.
그날의 감동을 못 잊어 그다음 해에도 한번 더 가보려고 했지만 그동안 코로나 시절도 지내고 개화기도 놓치고 하는 사이에 어언 4 년이 지났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그 모감주꽃길이 생각나서 올여름에는 꼭 다시 한번 그 길을 친구들과 함께 걸어 보겠다고 노을공원을 향해 집을 나섰다.
그런데 4년 전에 노을공원 북측 난지순환로를 통해 정상까지 올라가는 비교적 먼 길을 처음 걷느라고 모두 7월 더위를 무릅써야 했다. 모감주꽃길이 아름답기는 했지만 걷는 길에 쉼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더위에 강행군했던 기억만 더 강하게 남았는지 그 후에 내가 노을공원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친구들은 그 길이 덥고 힘들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했다.
그랬던 친구들이 오늘 노을공원에 가자고 월드컵경기장역 1번 출구에서 만나자고 했더니 전부 열다섯 명이나 모였다. 모두 기억력이 감퇴했나?
일부구간은 맹꽁이전기차를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고 했더니 그 말이 약간은 안심이 되었나 보다.
맹꽁이차는 두 군데서 탈 수 있다. 역에서 가까운 난지천 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차가 있고 노을공원입구에서 출발하는 차도 있다.
우리는 숲이 좋은 난지천 공원을 먼저 걷고 노을공원 입구 주차장에서 맹꽁이차를 타기로 한다. 그런데 노을공원입구 주차장에 이르자 맹꽁이차를 타겠다는 친구들과 계속 걸어가겠다는 친구들 두 팀으로 나뉜다. 그래서 정상에 있는 노을전망카페에서 모두 만나기로 하고 일부는 맹꽁이차를 타고 나머지는 걸어서 올라간다.
올라가는 길의 모감주꽃은 많이 지고 벌써 초록색의 꽈리 같이 생긴 열매도 열리고 있지만 그래도 늦게 꽃이 핀 나무들이 아직 좀 남아서 우리의 기대를 크게 저버리지는 않는다. 일주일쯤 일찍 왔어야 했나 보다. 꽃잎이 떨어질 때 황금비가 내리는 것 같다고 영어로는 황금비나무( Golden Rain Tree)라고 한다는데 올해는 그런 멋진 장면을 놓치고 말았다.
노을공원도 월드컵공원의 하나인 하늘공원과 마찬가지로 쓰레기 매립장 위에 만든 인공산으로 나무와 잔디로 잘 가꾸어진 공원이다. 지금은 푸른 잔디가 아름다운 파크골프장과 캠핑장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전철역에서는 거리가 좀 있어서 여기까지 걸어오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곳에서 보는 노을이 아름다울 테니 저녁이 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겠다.
정상에 올라 전망 카페에 들어가니 맹꽁이차를 타고 먼저 올라온 친구들이 전망 좋고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땀 흘리며 걸어온 우리를 여유 있게 맞이해준다.
사람도 적고 시원한 카페에서 닭튀김, 피자, 우동, 김밥으로 푸짐하게 점심을 한다. 시원한 맥주도 기대했으나 여기서는 팔지 않는다고 해서 좀 실망한다. 점심 후에는 며칠 전 생일을 지낸 K 가 후식으로 팥빙수를 한턱낸다고 해서 모두 좋아하며 박수를 친다.
하산할 때는 일찍 가야 할 사람만 먼저 맹꽁이차를 이용하고 다른 친구들은 걸어서 내려간다.
돌아갈 때는 하늘공원의 그늘 좋은 메타세쿼이아길과 페튜니아가 예쁘게 심어진 구름다리를 건너서 평화광장을 지나 월드컵경기장역으로 간다.
월드컵공원이 넓기는 넓은가 보다. 오늘 노을공원까지
다녀오는데 만 칠 천보가 훨씬 넘었으니 말이다.
2024년 7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