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폭우로 취소되었던 광릉숲길 산행을 오늘 재도전해보기로 했다.
장마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오늘은 비는 내리지 않으나 폭염경보와 소나기 예보가 내려져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하철 냉방시설만 믿고 집을 나선다.
광릉이나 국립수목원은 시내에서 거리가 멀고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어려워 가보고 싶었지만 오래 동안 가까이 가지 못하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재작년에 4호선이 진접역까지 연장되어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광릉 숲길이라고 봉선사입구에서 수목원입구까지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서 요즘 많은 산책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오남역에서 만나 봉선사로 가기로 한다. 진접역에서도 갈 수 있지만 오남역에서 봉선사 가는 버스들이 더 많이 출발한다.
거리가 멀다 보니 평소 보다 일찍 집에서 나와 예상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오남역에 도착하였는데 벌써 두 친구가 와 있다. 한 친구는 분당에서 오는데 약속시간 세 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하였단다. 다른 친구들도 모두 약속시간 전에 도착했다. 워낙 먼 곳이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던 모양이다.
열두 명이 모였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니 봉선사행 버스가 방금 떠난 듯 20분 정도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한다.
버스를 타고 다시 20분쯤 달려 봉선사입구에서 하차한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니 정면으로 봉선사 가는 길이 보이고 오른편에 광릉숲길 표지판이 있다. 봉선사는 숲길을 먼저 걷고 온 다음에 들리기로 하고 숲길을 따라 들어간다.
이 숲길은 국립수목원으로 봉선사천을 따라가는 광릉수목원로 옆으로 만들어진 보행자도로인데 데크길로 이루어져 걷기에 매우 편하다.
500년 이상 된 명품숲답게 광릉숲길 초입부터 길옆에는 아름드리 키 큰 나무들이 줄줄이 서 있고 짙은 나무그늘을 만들어 준다. 데크길을 따라가다 왼편에 숲 속으로 들어가는 오솔길도 있으나 며칠 전에 내린 폭우 때문인지 들어가는 길을 막아 놓았다.
도중에 만나는 다리 밑 봉선사천의 물살이 아주 빠르다. 숲길 입구에서부터 20분쯤 걸으니 세조의 광릉이 오른편에 나타난다. 광릉 관람은 후에 따로 날을 잡아 오기로 하고 오늘은 광릉 숲길에만 집중한다. 20분쯤 더 걸어가니 국립수목원의 정문이 나온다. 그런데 수목원 매표소 앞에 도착했을 때 벌써 우리의 점심시간인 한 시가 가까워졌다. 여기까지 왔으니 점심을 먹고 수목원 내부를 둘러보는 것이 좋겠으나 가까이에 식당은 없고 수목원 안에도 식당이 없고 카페만 있다. 시간이 부족하니 할 수 없이 식당가가 모여 있는 봉선사입구까지 다시 4,50분을 걸어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오남역에서 버스 기다리는 시간만 허비하지 않았어도 수목원을 잠시 둘러보고 돌아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지만 2.3km의 광릉 숲길을 왕복한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한다.
봉선사 앞에 있는 인터넷에서 찾아 놓은 식당으로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세찬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다행히 날씨 운이 좋다고 감사한다.
더운 날씨에 땀도 많이 흘렸는데도 불구하고 “이열치열”이라나? 여러 친구가 뽕나무상계탕(삼계탕에 뽕나무를 넣어 끓였다고 함)이나 뜨거운 영양돌솥밥을 주문한다. 오늘이 중복날이니 보양식을 먹어야 한다면서. 산채비빔밥을 먹겠다는 친구도 있다.
점심 후에 식당을 나오니 비는 언제 왔냐는 듯 말짱히 그쳤다. 몇 집 지나서 괜찮아 보이는 카페에 들어간다. 주인의 취미가 다양한 듯 걸린 사진과 인테리어 소품들이 분위기 있고 서로 잘 어울린다.
커피와 빙수로 후식 시간을 보낸 뒤에 시간은 좀 늦었지만 봉선사 관람을 하기로 한다. 마침 연꽃축제도 열린다고 하니 좋은 기회다.
봉선사는 원래 고려시대에 세워진 절이었으나 조선초 세조의 왕비였던 정희왕후가 여기 운악산에 광릉을 정하면서 선왕인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재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보통 사찰 입구의 일주문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커다란 산문에 한글로 “운악산봉선사”라고 현판이 걸려있다. 산문을 지나고 주차장을 지나니 약간 높은 곳에 연못이 나오고 연밭이 펼쳐진다. 연못 둘레에는 청사초롱이 매달려 있어 축제분위기를 내고 있다. 연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피어있는 연꽃도 많지는 않다. 연꽃이 일찍 핀 건지? 아니면 아직 덜 핀 건지? 어쨌든 지금 피어있는 희고 붉은 연꽃은 크고 풍성하고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다.
이제 연밭을 돌아보고 대웅전쪽으로 간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봉선사에서 특별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보통 볼 수 있는 대웅전이라는 한자어 대신 큰 법당이라고 한글로 쓴 현판이라는 것이었다. 과연 큰 법당뿐만 아니라 현판 아래 기둥들에 세로로 적힌 주련도 모두 한글이다. 그러지 않아도 불경에서 인용되는 문구는 온통 한자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한글로 보니 반갑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색적인 광경은 오늘 큰 법당의 앞마당을 가득 채운 흰색 연등이다. 석가탄신일 전후에 절에 가면 화려한 색깔의 연등을 볼 수는 있었지만 백색 연등은 오늘이 처음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백색 연등은 백중날(음력 7월 15일) 기념행사를 위한 연등이었다. 백중날은 먼저 떠난 조상과 스님들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제사를 드리는 날이라고 한다.
오늘은 광릉숲길을 걸었을 뿐 아니라 봉선사에 가서 연꽃 감상과 함께 그동안 무지했던 역사와 종교에 대한 맛보기 공부까지 하고 왔다.
다른 때보다 늦게 집에 도착하여 보니 오늘은 폭염에도 불구하고 만 오천보 이상 걸었다.
그리고 참! 한 가지 의문이 풀린 것 같다. 국립수목원은 예전부터 오랫동안 광릉수목원으로 알고 그렇게 불러왔는데 언제부터 인지 국립수목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왜 바뀌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오늘 이곳에 와 보고 내 나름대로 추리해서 내린 결론에 의하면 포천시와 남양주시 사이의 주도권 경쟁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국립수목원은 행정구역상 포천시 소속이고 광릉은 남양주시 소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수목원이란 이름은 여기 말고도 전국 여러 지방에 있는 평범한 이름 같으니 광릉수목원이라는 이름이 이 지역의 고유한 역사적 특성을 더 잘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2024년 7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