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을의 시작이라는 입추라는데도 아침부터 여전히 폭염경보가 울린다. 체감 온도까지 과장하여 공지하니 더위가 더욱더 견디기 힘들다.
이럴 때는 어디로 피서를 가야 하나?
며칠 전 서울 주변의 여름 계곡을 소개하는 동영상에서 본 푸른 숲계곡과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매우 끌린다.
그래서 오늘의 행선지를 청계산 맑은숲공원으로 정했다.
청계산은 전에 서울 서초구에서나 과천 대공원 쪽에서 오른 적은 가끔 있었으나 맑은숲공원은 그 반대편인 의왕시에서 청계사 계곡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있다.
지하철 4 호선 인덕원역 2번 출구에서 모두 열명이 모였다. 여기서 청계사 입구까지는 마을버스 10번을 타고 올라가서 청계산 주차장에서 하차한다.
주차장에서 내리니 금방 산책로 입구가 보여 그리로 들어서서 걷기 시작하니 눈앞에 곧 시골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한 친구가 갑자기 “오래간만에 촌스러운?” 경치를 보게 되어 기분이 좋다고 뜻밖의 단어를 사용해서 모두들 웃었다. 도시에서 오래 살더니 도심의 공원만 걷다 왔나 보다.
맑은숲공원에는 청계산 정상을 향하여 계곡을 따라 무장애 데크길을 숲 속에 만들어 놓아 아주 편하게 걸을 수 있다. 계곡입구에서는 울창한 메타세쿼이아숲길이 시작되는데 이 숲길이 일품이다. 백 년은 되었을 것 같은 나무들이 이제까지 서울 주변에서는 못 보던 굵기와 크기를 보여준다.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이 나무의 수령이 백 년은 넘지 않았겠지? 나무 이름이 여태 우리말로 불리지 않으니 말이다. 낙엽송? 낙우송? 인지 아마 자생종이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끝나고 계곡의 숲길이 계속되는데 더 오래된 몇백 년은 넘었을 듯한 소나무들과 함께 숲이 울창하다. 산 위에서 흘러내려오던 개울물이 이제 땅속에 숨어 거의 보이지 않을 때쯤 갈림길에 등산로 입구를 가리키는 표지판과 그 옆에 정자 한 채가 서 있다. 여기서 잠시 쉬기로 한다. 쉬면서 안내판을 보니 청계사라는 절이 골짜기 건너편에 가까이 있어서 그곳에 들려 보려고 하는데 그리로 가는 길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 끊어진 개울 위로 지름길이 보이기는 하나 사유지인지 문으로 막혀 있다. 하는 수 없이 올라오던 개울옆길을 다시 내려가니 물 흐르는 개울 위에 다리가 하나 있다.
이 다리를 건너서 데크 길을 조금 더 올라 청계사로 올라가는 자동차 도로와 만난다. 많은 차들이 줄지어 올라가고 내려온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절 앞에 가서 그 의문이 풀린다. 수능 수험생을 위한 백일기도가 어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오르내리는 차도 많고 길 옆에도 많은 차들이 세워져 있다.
청계사는 처음 와 보는 절인데 규모가 상당히 크다. 청계산 계곡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절은 신라 때 창건하고 고려 때 중창되었다는 역사적인 고찰이다. 까마득히 높이 올라가는 돌계단이 시작되는 옆에 “우담바라 핀 청계사”라고 새겨진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전설의 꽃 우담바라가 이 절의 한 불상에서 피었다고 한다.
높은 계단을 오르니 설법전의 굵은 돌기둥들 아래에 이르고 그곳에서 계단을 또 오르니 그제야 극락보전이 보인다. 극락보전은 이 절의 중심 법당으로 지금은 색색 연등으로 앞마당이 가득 차 있어 전체 건물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극락보전 옆으로는 커다란 와불상이 모셔져 있다. 이 누워 있는 와불상은 주먹만 한 자갈돌을 모아 붙여서 만들어졌고 황금색으로 채택되었다. 채색이 오래된 것 같지 않아서 언제 완공된 것인지 궁금했는데 찾아보니 1999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우리 중에 불교신자인 친구들이 있어 그들이 법당에 들어가 기도하고 나오는 사이에(손주들이 수능시험에라도 응시했나?) 다른 친구들은 여러 법당들을 차례로 천천히 돌아보며 문화 탐방을 한다. 청계사는 산중턱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절 뒤편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절 건물의 지붕 너머로 산골짜기 풍경이 멀리까지 펼쳐져 전망이 아주 좋다.
청계사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는 계곡에서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을 보자 우리 친구들도 못 참겠다는 듯이 서둘러 다리를 건너서 물가로 내려간다.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는 만족하다는 표정으로 내려가지 않고 위에 앉아 있는 친구들을 향해 손짓한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찬물에 발을 담가 보고 올라온 친구들은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면서 들어가 보길 잘했다고 몇 번씩 말한다.
주차장 근처에는 식당이 보이지 않아서 마을버스를 타고 식당거리까지 가기로 한다. 마을버스 기사에게 괜찮은 식당 한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가까운 곳에 내려준다. 한식당인데 점심시간이 지나서 조용하고 넓고 시원해서 모두 맛있게 점심을 먹고 만족스러워한다.
음식점에서 인덕원역까지는 또다시 마을버스를 이용한다.
오늘도 시원한 청계산 계곡에서, 냉방 잘된 식당과 버스와 지하철에서 피서하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거기다가 우리의 솜씨 좋고 알뜰하고 나누기 좋아하는 살림꾼 Y 여사는 저녁 반찬 하라면서 친구들 모두에게 조기 두 마리씩을 쥐어주니 또 희희낙락할 수밖에!
오늘은 약 9.6킬로미터, 12700 보 정도 걸었다.
2024년 8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