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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Sep 27. 2024

남산 자락숲길

오늘은 광복절이다.

해방 후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서 특히 우리 동년배들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광복의 기쁨 속에서 잉태되었을 테니까.

그러나 물론 기쁨의 기간도 잠시였고 해방 후의 혼란기와 이어진 전쟁 시기를 지나며 전쟁 중에도 우리들을 살리고 지켜내시느라고 우리 부모들은 말할 수 없이 힘든 삶을 사셨을 것이다.


7,80년 전 우리 부모들의 고생스러웠던 그 시절을 상상하고(피란 시절의 고생담은 백세가 넘으신 어머니께 귀가 닳도록 내 평생 들어왔으니까) 오늘날과 비교해 보며 그분들 덕분에 우리가 얼마나 좋아진 세상에서 편히 살고 있는지를 광복절을 맞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공휴일에도 우리의 걷는 모임은  계속된다.

공휴일이어서 유명한 계곡이나 공원은 마지막 여름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일 테니 한적한 동네 뒷산에서 그늘을 찾아 걷기로 한다.  


오늘 걸을 곳은 “남산 자락숲길”이다.

원래 산 이름은 매봉산이고 길 이름도 매봉산 숲길이라고 불렀으나 최근에 데크길이 조성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 매봉과 매봉산이 많으니 아예 주산인 남산의 자락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보다. 새로운 길을 만들면 그 길에 이름도 새로 붙여야 하는 담당자들의 고심이 느껴진다.


남산자락숲길은 왕십리 무학봉에서 시작하여 금호동의 금호산, 옥수동과 약수동 사이의 매봉산을 넘어 버티고개 생태통로를 지나 장충동 국립극장 앞 남산공원 입구까지 이어지는 5.5 킬로미터의 무장애숲길인데 오늘 우리는 그 길의 일부를 걸어보기로 한다.

지하철 6호선 버티고개역 3번 출구에서 아홉 명이 모인다.

역에서 나와 직진하면 매봉산과 남산을 연결하는 버티고개 생태통로와 남산자락숲길을 알려주는 새로 칠한 표지판도 보인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계단을 오르니 금방 남산자락숲길이라고 아치형 입구가 나타난다. 입구 옆 아래쪽으로 한남 테니스장이 있다. 원래 이 길은 한남 테니스장에서 매봉산 정상(174m)에 이르는 등산로로 꽤 가파른 구간이 많 다. 이 매봉산 북쪽 자락 가파른 길에 지그재그로 무장애숲길이 생겨서 이젠 보행약자들도 아주 편하게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곳은 비교적 오래된 숲이어서 소나무가 울창하고 그늘도 많다. 지금 걷고 있는 매봉산 남쪽과 북쪽으로 고층아파트들이 그득하지만 이 숲길에 들어서면 우리가 도심에 있다는 것이 도무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숲이 울창하다.

매봉산 정상까지 가려면 가파른 계단으로 더 올라가야 하지만 오늘은 계단 앞에서 표지판만 보고 그냥 지나친다. 날씨가 몹시 더우니까.

지나가는 길옆에 방송고등학교도 있고 산길 아래에는 옥수동 버스 종점도 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는 제목의 연극이 나올 정도로 옥수동 꼭대기에서 한강과 강 건너 풍경이 잘 보였지만, 그동안에 옥수동이 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되면서 이제는 고층아파트 숲에 가려서 반짝이며 흐르던 한강도 유명한 압구정동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매봉산 정상에 오르면 한강 풍경이 잘 보이련만 우리는 정상을 비껴 왔으므로 한강 전망은 조금 낮은 금호산 정상 부근 정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즐길 수 있다. 금호동의 뒷산을 금호산이라 부르는데 정상에는 군사시설이 있는지 철조망과 옹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자락길을 잠시 벗어나서 봄에 벚꽃이 아름답게 피는 정상 주변 숲길을 한 바퀴 돌고 나오니 약수역 가는 마을버스 05번 종점(약수역과 금호산 응봉근린공원 사이를 운행함)이 보인다. 그리고 이곳에도 남산자락숲길로 들어가는  아치형 입구가 있다. 조금 전 정상 근처에서 잠시 자락숲길을 벗어나 벚나무길을 걷고  돌아왔기 때문에 다시 입구를 만난 것이다. 여기에서 계속 신금호역 방향으로 내려가 대현산을 넘어가면 무학봉까지 남산자락숲길을 완주하는 코스이지만 우리는 마을버스 종점을 반환점으로 삼아  되돌아서 약수역 쪽으로 가기로 한다. 남산자락숲길을 이번에는 금호동 쪽 입구에서 들어가는 것이다.

아치형 입구에 들어서니 길 양옆에 태극기 문양을 넣은 작은 바람개비들이 줄지어 돌며 우리를 환영하는 듯해서 오늘이 광복절임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다시 들어선 자락길은 금호산의 북쪽이어서 이 길에서는 강북의 서울 풍경이, 남산에서 시작하여 북악산, 북한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의 이 태조께서 정말 아름다운 곳에 도읍을 정하셨네!  하며 모두들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 풍경에 한번 더 감탄한다.


산행을 마치고 자락길 도중 좀 전에 그 위로 지나갔던 옥수동 버스종점까지 가서 이번에는 아파트 옆길로 내려가 약수 시장을 거쳐 약수역 네거리로 간다.


점심 메뉴로는 어제 말복이었지만 삼계탕을 못 먹었다는 친구들을 위해 닭찜(진남포식?)과 녹두전, 막국수를 택한다. 후식으로는  옥수동에 사는 친구가 오래간만에 나와 자기 동네에 왔으니 초대한다면서 커피와 빙수를 사주어 모두들 맛있게 먹으며 즐거워한다.


오늘은 버티고개역에서 시작하여  매봉산과 금호산을 지나는 한적한 남산자락숲길을 걷고 약수역으로 내려왔는데 총거리는 8.3km, 걸음수는 11000 보 정도된다.


2024년 8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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