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더위가 멈춘다는 처서라는데 그래서인지 아침 공기에서 미세하게 서늘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도 낮 최고 기온은 32도까지 오를 것이라고 한다. 더위는 아직 멈출 생각이 없나 보다. 우리가 시원한 그늘과 계곡을 찾아가서 더위를 피하는 수밖에.
2주 전에는 남쪽으로 청계산 계곡에 다녀왔으니 오늘은 북쪽으로 수락산 벽운계곡에 가려고 한다.
수락산 같은 서울의 명산들은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오르는 높은 산이고 우리도 한때는 정상까지도 올라가 본 적이 있는 산이었지만 이제는 이 산을 멀리서만 보고 옛 시절을 떠올리는 그리운 먼 산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정상으로만 오르는 등산로 외에도 산자락을 돌 수 있는 자락길이나 둘레길이 많이 만들어져서 우리도 그동안 멀리서 그리워하던 산을 이제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서울둘레길이 처음 생기고 우리가 걷기 모임을 시작했을 때 제일 먼저 시작한 길이 서울둘레길 1코스였다.
당시에 서울 둘레길 1코스는 도봉산역 옆 창포원에서 출발하여 수락산, 불암산, 용마산, 망우산, 아차산까지 이어지는 상당히 긴 코스였다. 그때도 우리는 물론 이 1코스를 완주할 생각은 꿈도 못 꾸고 창포원에서 수락산자락으로 벽운계곡입구까지 일부 구간을 걸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 길던 서울둘레길 1코스가 짧게 길이가 세분되면서 우리가 처음 걸었던 길은 수락산 코스라고 산의 특성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오늘은 이 수락산의 자락길과 벽운계곡을 걸으려 한다.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1번 출구에서 만난다. 모두 아홉 명이 모였다.
지하철역에서 나와서 큰길인 동일로를 따라 곧장 앞으로 가니 수락산 입구 교차로와 오른쪽으로 벽운계곡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아파트 단지의 대로를 따라 얼마 가지 않아서 금방 계곡 입구가 나온다. 전철역을 떠나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넓은 개울 건너편에는 물놀이객들을 위한 주차장과 식당들이 있고 이쪽 편에는 수락산 자락길을 보여주는 안내도가 서 있다.
산골짜기와 계곡 입구가 널찍하게 펼쳐진다. 여기서부터 벽운계곡이다. 예전에 누군가 이곳 경치에 반하여 바위에 碧雲洞天이라는 글을 새겨 놓아 그 이후로 벽운계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계곡을 오르는 길옆으로는 숲이 울창하고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계곡물이 흐르는 도중에 수심이 얕은 곳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고 있다. 물 웅덩이가 넓은 곳이 자주 보이는데 이런 곳에서는 얼마 전까지 아이들이 즐겁게 물놀이를 했을 테지만 여름방학이 끝난 지금은 평일이기도 해서 아이들은 보이지 않고 어른들만 물가에 돗자리를 깔고 모여 앉아 있다. 산책길이 완만하여 우리를 비롯해서 오가는 산책객들의 평균연령이 꽤 높아 보인다. 물론 정상을 향해 땀 흘리며 올라가는 젊은 등산객들도 꽤 있지만 벽운계곡 길은 비교적 한산한 편이다.
계곡을 올라갈수록 멋진 바위들이 점점 더 커지고 골짜기는 좁아지면서 커다란 바위 사이를 솟구쳤다 흘러내려오는 계곡물소리가 우렁차서 듣기만 해도 시원하다. 관동별곡에 묘사된 강원도 산골의 물소리가 연상된다.
염불사라는 절 근처까지 가니 편한 데크길이 끝나고 절의 돌담 아래 왼쪽으로 야자매트가 깔린 계곡길이 계속 이어진다. 한동안 야자매트 길이 계속되더니 얼마 가지 않아 드디어 오르막 돌길이 시작된다. 이제부터는 정상으로 오르는 본격적인 산길이라서 쉽지 않고 험해 보이는 등산로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목적은 수락산 정상 정복이 아니라 계곡 산행이므로 이쯤 해서 계곡 중간에 나타난 다리 아래서 멈추기로 한다. 이제 세찬 개울소리를 보고 듣기만 하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쉬어 가자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친구들은 얼른 신발을 벗고 물가로 내려간다. 얕게 흐르는 물가에서 나지막한 바위 하나씩 찾아 앉아 시원하게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는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2주 전에도 청계산의 청계사 계곡물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때 못 오고 오늘 온 친구 S는 얼마 만에 이런 시간을 갖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좋아한다.
친구가 준비해 와서 돌린 과일까지 먹어가며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여유 있게 쉬는 시간을 갖고 계곡을 즐긴 후에 오던 길을 다시 내려간다.
벽운계곡은 수락역에서 정말 가깝다고 내려오면서 다시 한번 더 느낀다. 이렇게 시내에서 가깝고 시원한 계곡이 있었는데 몰랐네, 진작 와 볼 껄하고 생각하며 이제 식당을 찾아간다.
역 근처 먹자골목에는 많은 식당이 있는데 그중에 해물칼국수집이 우선 눈에 띄어 그리로 들어간다. 뜨거운 칼국수뿐만 아니라 냉콩국수와 해물파전도 있어 모두 식성대로 먹고 흡족해한다.
후식으로는 싹싹한 식당 여주인이 추천하는 대로 가까운 곳에 새로 개업한 카페에 갔는데 다육식물을 예쁘게 키워 많이 진열해 놓은 운치 있는 카페다. 오늘은 R 이 자신의 손자에게 좋은 일이 있다면서 커피로 한턱낸다.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동안 예정된 민방위훈련 시간도 지나갔고 예보에 있던 소나기도 한바탕 지나갔다. 카페에서 나오니 도로는 젖어있고 지나가던 사람이 막 우산을 접고 있었다.
오늘은 천천히 쉬엄쉬엄 걸어서 얼마 걷지 않은 것 같은데도 집에 오니 11700 보 걸었다고 만보계가 알려준다.
2024년 8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