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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Apr 08. 2023

자기소개가 싫다

동네 학습관 강의 수강 첫날의 후기

자기소개가 싫다.


나를 뭐로 소개해?

나를 묘사하고, 설명하려 하니 인생이 주르륵이다.

게다가, 지금 이곳은 어디인지, 이 사람들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나를 소개할 것인지, 어떤 내용부터 어떤 내용까지 나를 소개할 것인지.

내 삶을 얘기할 건지, 아니면 나를 막연하게 반쯤, 혹은 80%쯤 가리고 드러낼 건지. 고민한다.


앞사람들이 주저 없이(라고 추측한다. 간간이 망설임과 은폐의 단서가 보이기도 하지만 궁금함은 갖지 않는다) 자기 일상과 삶의 여정을 줄줄이 읊는다.

"와 말 정말 잘하시네요!"라고 감탄하지만, 그 이면에는 '와 정말 망설임 없이 스스로를 드러내시네'라고 놀라고 있다. "어머 샘도 말씀 잘하시는데요 뭐." "아 직업이 사람 앞에 서는 일이라서요."라고 답하면서 머쓱해한다.

나를 "낯가림 심하고, 내향형인 사람이에요."라고 소개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내가 정말 그렇기만 한가?'하고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어쩌면 선택적 낯가림과 내향인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온전히 드러내도 안전하다 싶은 곳에서는 나를 매우 능숙하게 드러낸다. 그곳은 바로 무대 위, 혹은 강단이다.

그렇지 않고 내가 참가자 중 한 사람이고, 게다가 그곳이 그 어떤 감수성도 확인되지 않은 곳이라면 나의 낯가림과 내향성은 최고치가 된다. 아주 조금의 스트레스에도 죽어버리는 게임 속 개복치처럼 말이다.

무대 위에서, 강단에서 나는 힘을 가진 존재가 된다. 내 입 밖으로 나온 단어들과 문장들은 대개는 듣는 이들에게 받아들여지거나 그래야만 한다. 내 존재 자체가 내 공연의 메시지이고, 내 강의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그 자체일 때가 많으니까.

내가 힘을 가졌을 때는 내가 누구인지 드러내는 것이 두렵지 않다. (아닌가? 나만 그런가?)


동네 학습관 강좌에서 경력단절 전업주부 여성들에 둘러싸여 자기소개(심지어 내면 탐색을 한 후 자신을 드러내 수 있는 표현을 붙여서)를 해야 하는 순간은 긴장과 불안함으로 승모근이 뻐근해지는 지경이다.


그래서였는지 비폭력대화 수업의 체크인 방식이 좋았다.

느낌 단어에서 내 상태를 말하는 하나를 골라 간단히 내 상태를 말하는 것.

라포가 생기기도 전에 문을 열라고 억지로 마음의 문을 뜯어 내는 것 (내 마음이 이렇게 느꼈다.)이 아니라 마음의 문을 일단 노크하는 정도랄까. 노크하고 '네 마음이 어때?'라고 묻는 정도. (그래도 사람들은 느낌단어 하나로도 인생을 줄줄이 줄줄이 얘기하지만 말이다.)


내 강의들, 워크숍들을 돌아보게 된다.

지난 수업들을 돌아본다. 혹 내가 누군가를 긴장하게 하거나 불안하고 두렵게 하지는 않았을까?

다시 점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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