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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Mar 05. 2023

루틴 거부자의 루틴 만들기 (3)

가끔 그럴 때가 있지 않나요?

매일 하던 칫솔질이 어색해져서 이게 맞나? 이렇게 하는 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이 닦기 프로세스를 어색해하는 순간 말이죠.

아주 가끔 그럴 때는 정말 당황스러워요.

청소년 시절, 청년 시절에도 그랬던 것 같은 기분이 있으니 나이 탓은 아니겠죠?


일요일인 오늘 아침에는 늦잠을 자고 싶어 꼼수를 부렸어요.

루티너리와 약속한 루틴을 한 듯이 완료 버튼을 눌러댄 거죠.

루티너리의 열매 단계가 뭐라고… 꼼수를 쓰는 걸까요.

뭐 그랬다고 자책을 하거나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으로 생각하지는 않아요.

나 자신에게 관대함을 발휘하죠.

하루 정도는 그래도 된다고요.

그래도 오전에 물 한 잔 마시기 챌린지가 있으니 11시에는 일어났어요.

루티너리에 입력해 놓은 것들 중 몇 가지는 생략해요.

그리고 나 대신 반려인이 준비해 준 미지근한 물이 가득 든 물컵 사진을 찍어 챌린저스에 업로드해요.

물 마시기 챌린지는 완료!

뿌듯해요.


루티너리의 루틴은 유연하게 스스로 꼼수를 선택하지만 챌린저스의 챌린지에도 똑같이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돈 때문인가 봐요.

챌린지 하는데 돈을 걸고 하거든요.

물 마시기는 5천 원, 주 3일 만보 걷기는 1만 원을 걸었죠.

한 번쯤 빼먹는다고 내가 걸어놓은 돈을 잃는 건 아니지만, 상금을 탈 수 없게 되어요.

물 마시기는 몇 십원, 만보 걷기는 고작 3,4백 원이지만 이걸 잃는다는 게 생각보다 강력한 동기가 되더라고요.

엊그제부터는 주 3회 블로그 글쓰기 챌린지를 시작해서 이렇게 사흘째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고요.

“그깟 몇 백 원 때문에?” 자문해 봤어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요.

시간을 두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어요.


오늘은 주 3회의 만보 인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어요.

그래서 무거운 다리를 끌고 운동화를 신고 문을 나섰죠.

소파에 늘어져 티브이 리모컨을 쥐고 졸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답니다.

두 달의 챌린지 덕분인지 이제는 언덕배기를 오르는 데 자신이 생겼어요.

우리 빌라 단지를 지나 앞 빌라 단지의 언덕을 어렵지 않게 스르륵 올랐어요.

걷다가 잠시 멈춰 무선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골랐어요.

오늘은 늘 듣던 클래식을 듣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좋아하던 음악이 뭐였지?’

찬찬히 생각했어요.

애플 뮤직에서 70년대 팝 플레이리스트를 골라 플레이했어요.

TOTO의 Africa를 듣고 나자 Guns N’ Roses의 Sweet child O’ mine이 나오는 거예요.

평소 같았으면 반가웠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른 곡을 찾기 시작했어요.

누구의 음악을 듣고 싶지?

갑자기 여성 멤버가 있는 록밴드 Heart가 생각났어요.

Alone이 시작되자 그야말로 마음이 녹아 흘러내리는 것 같았어요.

Heart곡 몇 곡을 플레이 리스트 Like it에 저장하고, 다음으로 Queen, Chicago의 곡들을 골라 담았어요.

Don’t stop me now가 끝나고 Hard to say I’m sorry의 전주가 나올 때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어요.

‘아 음악이 이렇게 마음에 위로가 되는구나.’

나는 노래를 만들고 무대에 서서 노래하는 사람인데 그걸 이제야 알았네요.

그러면서 오늘 오전에 읽었던 기사에 등장한 학교폭력으로 스스로 삶을 마감한 중학생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어요.

CCTV에 남은 그이는 울고 있었다고 해요.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마스크를 쓰고, 이어폰을 꽂은 채, 초봄에는 과한 롱 패딩을 입고서 나는 그 중학생의 마지막 순간, 그 마음을 느끼면서 소리 없이 통곡했어요.

마스크가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노래해야겠어요.

나는 노래할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요.

오늘의 챌린지, 오늘에 루틴에서 나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했네요.

누군가의 외로움을, 고통을, 절망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어요.

노래해야겠어요.

그렇다면 노래를 위한 루틴을, 노래하기 위한 일상을 만들어야겠네요?


루틴 거부자의 루틴 만들기는 일단 이렇게 새로운 루틴으로 구성된 일상을 제안하게 되었네요.

기뻐요.

이 짧은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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