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5월의 산책코스
우리가 즐겨 찾는 산책길 중에 과천의 서울대공원이 있다. 공원이 워낙 넓다 보니 걸을 곳도 많다.
젊었을 적에는 휴일이나 방학 때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의 동물원이나 놀이공원만 가끔 방문하기도 하였으나 나이 들어서 친구들과 함께 이렇게 자주 오게 될 줄은 몰랐다.
걷기 모임을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여기서 처음 시도한 길은 숲이 좋은 산림욕장길이었으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있어서 얼마 안 가서 수준을 낮추어 평탄한 동물원둘레길이나 호수둘레길을 걷게 되었다.
길은 같은 길이라도 계절마다 주변의 자연풍경이 바뀌니 자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른 봄에 벚꽃이 만발했다 지고 나면 나무에 새잎이 나기 시작해서 신록이 눈부시고 이 나무들은 한여름에 짙은 그늘을 드리워주며 더위를 식혀준다. 또 가까이에 청계산과 관악산을 바라보며 넓은 계곡을 걷는 기분으로 걸을 수 있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이런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으니 이곳을 걸으면 정말 복 받은 기분이다. 잠시 독일 쾰른에 살 때 한없이 평평하게 펼쳐지는 북독일 저지대의 평원을 보면서 서울을 둘러싼 많은 산을 그리워한 적도 있었지.
오늘은 장미축제가 열리는 테마가든을 찾는다.
축제라고 해서 인지 대공원역 대합실 안과 밖은 여느 때의 평일 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 같아도 공원이 넓어서 공원입구 안내센터 근처에 가면 모두 뿔뿔이 헤어져서 다행하게도 서로 부딪치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입구에서 호수 남쪽 오른편으로 가다 보면 다리가 나오고 이 다리를 건너기 직전에 우측으로 "호숫가숲길"이라고 유혹적인 이정표가 보이고 숲 속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나무계단을 보고 계단 앞에서 엄살 하는 친구들을 달래 가며 살살 올라가니 얼마 오르지 않아 과연 이름 그대로 호숫가 숲의 오솔길이 나온다. 경치가 정말 좋다. 호수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쉼터에 이르렀으나 쉼터의 벤치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다. 잠깐 앉아서 경치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할 수 없지. 서운한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호숫가숲길을 빠져나오니 갈림길이다. 한쪽은 동물원둘레길을 가리키고 다른 한쪽은 테마가든과 동물원매표소 방향이다.
우리가 들어간 테마가든 안에는 장미원과 모란작약원, 어린이동물원이 있다.
모란과 작약은 장미보다 개화기가 일러 작약은 이미 절정기를 지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화려했을 꽃잎들이 힘없이 빛을 잃어가며 새로 피어나 도발적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기 시작한 장미들에게 관람객의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 장미는 이제부터 피기 시작하면 계속 피고 지고 하며 늦여름까지 한동안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지만 만개한 작약은 내년 봄에나 와야 볼 수 있을 테니 시들어가는 작약꽃을 보는 마음이 왠지 허전하다.
장미원은 호숫가에 있어 물가에 그늘이 좋은 산책길도 있고 피크닉테이블도 있다. 하지만 오늘은 단체로 소풍 온 유치원생들과 장미원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우리는 앉아 쉴 자리를 찾을 수 없다. 겨우 물가 길옆에 드문드문 박힌 바위에 걸터앉거나 서성거리며 간식과 음료를 마시고 잠시 쉬어가야 할 판이다.
어쨌든 잠깐 쉬는 시간을 갖고 북적이는 장미원을 나와 이번에는 들어온 방향과 반대로 호수의 북쪽길을 따라 대공원역 쪽으로 걷는다. 길옆 왼편에 쳐놓은 울타리 너머 안쪽에 방금 우리가 들어갔다 나온 장미원의 잔디밭이 보이고 이 울타리에 매달려 줄지어 피어난 덩굴장미가 싱싱하게 빛난다.
오늘은 호수둘레길로 호수만 한 바퀴 돌아온 셈이라 많이 걸은 것 같지 않은데도 역 근처에 오니 벌써 만보가 넘었다.
점심은 부추전을 맛있게 한다고 하여 가기 시작한 할매집에서 하기로 한다. 이 집은 대공원역 가까이 있어서 집에 가기도 편리한 데다 음식맛도 좋고 야외에 테이블도 있어 우리가 봄가을에 자주 이용하는 한식당이다. 아주 추울 때나 더울 때는 미술관식당으로 간다.
2023년 5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