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7월의 산책코스
이 더위에 연꽃구경이라고?
물론 연밭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려면 뜨거운 뙤약볕을 감내해야 한다.
장마가 끝나고 오늘부터 무더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오늘 양수리 세미원으로 연꽃을 구경하러 간다.
세미원 연꽃 축제는 이미 7월 초에 시작되어 8월 중순까지 계속된다지만 중반기를 지났으니 꽃이 많이 졌으면 어쩌나 조금 염려되기도 한다.
코로나 시절 이전까지는 세미원에 한여름에도 몇 번 다녀간 적이 있지만, 오늘은 폭염에다 거리도 먼 곳이니 몇 명이나 모일까 했는데 양수역에 모인 친구들이 무려 열여섯 명이나 된다.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연꽃의 유혹은 뿌리칠 수 없나 보다. 참여한 친구들은 이렇게 더운 날 에어컨 켜고 방구석에 앉아 있는 것은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라고 하나같이 말한다.
양수역에서 세미원으로 가는 길은 양수역 삼거리에서 주차장 옆으로 하천가에 조성된 길로 물래길이라고 이름 붙어 있는 길이다.
물래길은 용담리로부터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가정천) 옆길로 보행자를 위한 길이다. 물래길 왼쪽으로 넓고 푸른 연밭이 펼쳐져 있지만 여기엔 아직 연꽃이 피지 않았다.
세미원에 도착하여 매표소를 지나고 연꽃박물관 앞 불이문을 통과하면 개울이 보이고 개울 가운데 징검다리가 이어져있다.
개울옆으로 그늘진 큰 나무 길도 있지만 개울물 소리가 시원한 징검다리 길을 택한다.
징검다리가 끝나면 장독대분수에서 장난스럽게 뿜어 나오는 물줄기를 볼 수 있다. 장독을 활용하여 만들어진 분수로 발상이 재미있다.
장독대분수를 지나 처음 만난 페리기념연못에는 활짝 핀 연꽃이 별로 많이 보이지 않는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꽃송이가 몇 송이만 남아 있다. 이미 꽃이 졌는지 꽃 떨어진 자리에 연밥이 달려있다. 이 연못의 꽃이 제일 먼저 개화하는 곳인가 보다.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는 친구들에게 조금 더 기다려보라고 위로하지만 자신은 없다.
연못 주위를 걷다 보니 육중한 다리 밑에 이른다. 팔당에서 북한강을 건너 양평 방향으로 가는 신양수대교 교각이다. 고맙게도 이 다리가 땀 흘린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내려준다.
마침 앉아서 쉴 수 있는 평상도 놓여있어 물 한잔 마시고 쉬어 가기로 한다. 다리 아래 평상에 앉으니 바람도 좋고 산과 강과 연꽃밭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오늘은 오래간만에 날씨가 맑아서 파랗게 개인 하늘에 하얗게 뜬 뭉게구름이 예뻐서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백련지의 하얀 연꽃은 많이 졌으나 홍련지의 분홍 연꽃은 아직 볼만하다.
연꽃은 일시에 피었다 한꺼번에 지는 꽃이 아니라 여름 동안 한 달 이상 계속 피고 지고 하니 비교적 오래 꽃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홍련지 근처에는 조각 작품들도 설치되어 볼거리도 많고 인공 개울까지 만들어 사람들이 발도 담글 수 있다. 전에는 세한정을 지나면 건너편 두물머리까지 배다리가 설치되어 그곳으로 건너간 적이 있었으나 지금은 공사 중이라 배다리를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마음이 깨끗이 씻어진다는 세심로를 따라 끝까지 가서 모네의 정원을 본떠 만들었다는 사랑의 연못 다리도 건너 보고 여러 가지 색깔의 열대수련들과 연잎이 어린아이라도 앉을 수 있을 만큼 큰 빅토리아 수련도 보고 연못을 돌아 나온다.
나오는 길에는 어릴 적 마당에서 볼 수 있었던 백일홍이 그득하게 피어있다. 마음 같아서는 바람도 시원한 다리 아래 그늘에 앉아 더 오랫동안 세미원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지만 연잎밥집에 가겠다고 시간 약속을 했으니 이곳에 더 머무를 시간이 없다.
연잎밥집은 세미원에서 양수역 가는 목왕로 대로변에 있고 홀이 넓어서 우리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가도 모두 앉을 수 있어 다행이다. 이 시간부터는 식당과 카페 그리고 전철이 우리들의 다음 피서지가 된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때 본 해외뉴스에 스페인에서 최근 주민들의 더위를 식혀주기 위한 *기후대피소*가 여러 곳에 생겼다고 보도한다. 우리에게도 그런 곳이 필요하지 않을까?
2023년 7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