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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Jul 28. 2023

도봉산 무수골계곡

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7월의 산책코스

시원한 계곡물소리가 그리운 중복날, 오늘은 도봉산의 무수골 계곡을 향한다.


내 어머니는 내가 열대여섯 살 될 때까지 매년 여름만 되면   우리 육 남매를 이끌고 서울 근교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셨다.


우이동계곡, 정릉유원지, 도봉산골짜기, 세검정 계곡 등등으로.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그 많은  꼬마 동생들이 택시 한 대에 겹겹이 끼어 앉아  승차인원 초과 때문에 검문당할까 봐 제대로 고개도 못 들고 타고 갔던 기억은 난다.


계곡에는 물이 넘쳐흘렀고 웅덩이 진 곳에서 아이들은 첨벙거리며 물놀이했으며 어른들은 물가에서 흐르는  물에 발 담그고 앉아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것을 바라보며 더위를  잊곤 했다.


오늘도 무더위가 예고되었지만 어릴 적 여름날의 물놀이를 추억하면서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시원하게 흐르는 물에 발도 담가보면 이런 더위도 견딜만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1호선 도봉역에서 나와보니 도봉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도봉천과 무수천이 합류하는 곳이 보인다. 우리는 무수천을 따라 무수골 쪽으로 올라간다.

무수골계곡은 우리가 6년 전에 처음으로 찾아왔던 곳이고 계곡의 물소리와 식당 정원의 배롱나무꽃이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아있는 장소이다.

계곡입구에 무수(無愁) 골의 유래가 새겨진 마을의 안내석이 세워져 있다.

세종대왕의 열일곱 번째 아들 영해 군의 묘역이 생기면서 조성된 오래된 자연마을로 물이 좋고 풍광이 좋아 대왕이 근심 없는 마을이라고 말했다 하여 그 이후부터 무수골이라 불렸단다.

과연 멀리 도봉산 봉우리들이 보이는 넓은 들판에 서울에 질리도록 흔한 고층아파트는  한 채도 안 보이고 논과 밭이 펼쳐진 편안한 시골마을 풍경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논농사를 짓는다니 정말 서울이 맞나 싶다.

도봉초등학교, 무수골야영장을 지나 무수천을 따라 올라가니 왼 편으로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크고 시원하다.

개울 바닥은 널찍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군데군데 물이 깊은 곳에서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평일이고 아직 방학을 안 했는지 물놀이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그 대신 개울가 그늘진 곳에는 이미 어른들이 여기저기 돗자리를 깔고 모여 앉아 쉬고 있다.  명당자리를 다 차지하고 앉았으니 아마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사람들인가 보다.


우리는 숲길을 계속 걸어 올라가서  자현암이라는 작은 암자 앞에 도착한다. 아주 오래된 절은 아니라고 해도  80년 전에 폐절터에 세워져 비교적 연륜이 있는  비구니사찰이다. 계곡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리는 산 중턱에  아담한 암자가 서 있다.


우리가 6년 전 이곳에 왔을 때는  암자 아래쪽 물가에 내려가서 물에 발도 담가보고 쉬어간 적이 있었으나 오늘 그 자리를 찾아보니 그동안에 변화가 있었다. 자현암에 가기 위해 건너가야 하는 개울 위로 시멘트 다리가 설치되어 있고 개울가로는 직접 내려갈 수 없게 되어있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땀을 식히는 자연 속 피서는 틀렸으니 다른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고 이제는 냉방이 잘된 인공 피서지인 식당이나 찾는 수밖에 없다.


자현암에서 도봉역으로 가는 길 중간쯤에 이태리 식당이 하나 있는데 음식도 음식이지만 이 식당에 딸린 정원이 특히 아름다워서  다시 한번 와보고 싶은 곳으로 꼽아 둔 곳이 있다. 특히 여름철에 배롱나무꽃을 이 정원에서 처음 보고 감탄한 적이 있었는데 백일 동안 꽃이 핀다고 목백일홍 이라고도 하는 배롱나무꽃은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구례, 안동등 남쪽 지방에서만 보던 꽃이고 서울에서는 흔히 볼 수 없던 꽃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 꽃을 서울 시내에서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 자주 볼 수 있는 꽃이 되었지만.


아쉽게도 오늘 식당 정원에서 본 배롱나무꽃은 이미 피었다가 지고 있는 건지 아직 덜 핀 건지 전보다  꽃이 적어 보이고 눈에 잘 띠지도  않는다. 그 대신 여름의 대표꽃들 능소화와 무궁화는 많이 피어 있다. 그리고 모과나무에는 다닥다닥  달린 모과열매들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이백 년 이상된 느티나무를 비롯해 오래된 많은 나무들과 여러 가지 꽃나무들은 여전히 정성껏 아름답게 관리되고 있다. 다만 이 정원은  개인 소유 정원이어서 식당에서 식사를 한 사람들만 관람할 수 있다.

처음에 배롱나무꽃을 보고 반해서 한 여름인데도 이 정원을  다시 찾게 되었지만 다음에는 봄이나 가을에 그리고 겨울에도 한번 또 와 보고 싶다.


무수골계곡을 오르내리느라고 땀을 비 오듯 흘리고 냉방 잘 된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 먹으며 땀을 식혔으나 정원을 관람한 후에는 뙤약볕 내리쬐는 무수천변을 걸어서 다시 도봉역까지 가니  또 땀이 줄줄 흐른다. 오늘은 땀을 많이 흘려서 온몸의 노폐물이 다 빠져나간 것 같다고 한 친구가  말한다. 이제는 지하철 냉방열차 안에서 땀을 식힐 수 있겠지?


오늘은 마치 사우나에서 열탕과 냉탕에 번갈아 들어갔다 온 것같이 이열치열(以熱治熱)의  피서를 하며 뜨거운 중복날 하루를 잘 보내고 왔다.  


2023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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