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대화로 커밍아웃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를 떠올려봐요.
내가 스물여섯 일 때였어요.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어"
가장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얘기했죠.
멋진 페미니스트이고, 동료이고, 멘토였던 친구들이었어요.
정확한 단어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선택까지는 하지말지…'의 의미였어요.
그런 말을 들으니 아프더라고요.
내가 처음 커밍아웃을 들었을 때를 떠올려봐요.
중학교 3학년이었어요.
우리 반 한 아이에게 같은 반의 여자애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여자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왜 나를 좋아하지 않지?'였어요.
그 아이가 나를 좋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나 봐요.
나에게는 누군가의 커밍아웃이 불편하거나 힘들거나 놀라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냥 자연스러운 것, 그럴 수도 있는 것이었죠.
누구나 나 같을 수는 없을 거예요.
이성애 중심사회에서 살던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만 동성애자의 존재를 봤던 사람들은,
평생 여성과 남성이 꾸린 가정만 경험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좀 다른 반응일 수도 있을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친구의 동생이 커밍아웃을 해서,
어떤 사람들은 친구가 커밍아웃을 해서 세상 어딘가에는 성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을,
아주 가까이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요.
누군가의 커밍아웃에 많이 놀랐고, 힘들었다고 얘기하는 이가 있었어요.
나는 처음으로 그 이의 마음이 궁금하고 걱정되었어요.
이런 나의 반응은 놀라운 것인데,
왜냐하면 나는 '성소수자에게 커밍아웃은 힘든 일인데, 그걸 들었다면 당연히 환영하고 감사해야지'라고 생각해 오던 사람이었거든요.
그게 맞는 거니까, 그렇게 해야 하는 거니까요.
저 이는 나의 커밍아웃도 경험했고, 주변에 레즈비언들도 많았다는데 왜 힘들었던 걸까, 진심으로 걱정이 되고 마음이 쓰였어요.
그 이의 마음을 잘 살피고, 그 고통으로부터 회복되도록 돕고 싶었어요.
커밍아웃을 듣는 사람들도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그리고 공감도 필요할 거예요.
그이들이 겪는 고통이 있겠죠.
우리 모두는 '그래야만 해!'의 세상에서 살아왔으니까요.
성소수자들이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쉽지 않고 고통스러운 것처럼,
그이들도 자신이 갖고 있는 이성애 중심적 사고를 깨고 벗고 낯설게 보기가 무척이나 고통스러울 거예요.
나는 이제야 커밍아웃을 듣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어 졌어요.
내가 차차 해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