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디자이너 라니씨가 추천하는 8월의 산책코스
입추, 말복이 지나고 태풍까지 다녀갔으나 기온은 연일 30도가 넘으며 더워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한여름에 아무리 더워도 30도 넘은 날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지구 온난화가 실감이 된다.
창문을 꼭 닫고 냉방기를 가동하면 실내는 시원해지고 더위는 피할 수 있지만 그 대신 밖으로 내뿜는 에어컨 실외기의 열기는 어찌하나?
그래서 창밖 도시 거리의 온도는 점점 더 올라가고 게다가 콘크리트 아파트와 고층건물 유리벽의 반사열은 온도 상승에 박차를 가한다.
오늘도 아침에 창문을 여니 건너편 아파트로부터 벌써 후끈하고 열기가 들어온다. 어딘가 시원한 곳, 바다나 폭포가 그리운 날이다.
작년에 찾아갔으나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 건너편에서만 보고 아쉬워했던 아라폭포가 생각난다.
경인 아라뱃길 도중에 산 절벽에서 흘러내려오는 인공폭포이다. 가까이 가면 시원하게 물맞이도 할 수 있다니 한번 시도해 보기로 한다.
공항철도 계양역에서 나오면 경인운하의 물가 산책길로 쉽게 갈 수 있다. 물가에 이르면 곧 서해를 향해 남쪽으로 자전거길과 도보산책길이 나있다. 작년에는 이 길을 따라갔었다. 그런데 아라폭포 앞까지 가까이 가려면 운하 건너편 북쪽 산책길로 가야 한다.
하늘 높이 떠서 운하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계양대교를 건너야 한다. 대교 아래 양쪽 교각옆에는 각각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높이가 상당히 높다.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 보행자와 자전거운전자를 위한 승강기이다.
승강기를 타고 9층에서 내려 다리에 올라서면 운하의 전경이 멀리까지 보이고 주변 산들과 어울려 아름답다. 그렇지만 대교가 워낙 높이 떠있어 아찔하므로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경치 감상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계양대교 건너편에 이르면 다남공원이라고 체육공원과 함께 공원시설이 갖춰져 있고 물가의 산책길도 연결되어 있다. 이 북쪽 산책길을 따라 서쪽으로 사오십 분쯤 계속 걸으면 아라폭포를 만나게 되고 아라마루 전망대에도 올라갈 수 있다.
원래 계획은 이렇게 계양대교를 도보로 건너 북측 물가 산책길을 걸어서 아라폭포에 가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도 삼십도 넘는 폭염이 예고되었으니 그늘이 많지 않은 물가를 한 시간 정도 걷는 일이 우리에게 무리가 되지 않을까 한편으로 염려가 된다.
할 수 없이 뙤약볕아래서 걷는 시간을 줄이고 폭포에 이르기 위해 차선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행히 계양역 앞에서 폭포 위쪽으로 아라마루 전망대(둑실동)까지 운행하는 마을버스가 있다.
한 시간에 한대꼴로 자주 다니지 않는 마을버스이지만 우리가 조금만 기다리면 그 버스를 탈 수 있다. 조그만 이 마을버스는 좁은 마을길을 돌고 돌아 논밭이 있는 시골풍경도 보여주며 우리를 전망대 앞 주차장에 데려다준다.
절벽 위에 조성된 전망대공원에서는 폭포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데크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폭포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보는 풍경은 말 그대로 그림 같다.
운하 건너편으로 보이는 계양산과 주변의 낮은 산들은 그야말로 수묵담채 산수화다.
계단을 좀 더 내려가니 우렁차게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곧 폭포가 보인다. 드디어 폭포 앞에서 물맞이를 하게 되어 모두 환성을 지르며 아이들처럼 좋아한다.
지난번 용마산 폭포도 그렇지만 아라폭포도 정말 자연스럽게 잘 만들어진 인공폭포이다. 다만 가동시간에 제한이 있어서 좀 아쉽기는 하지만.
폭포물이 흐르는 아래로 뒤쪽으로 동굴처럼 만들어 놓아 그 안에 들어가면 떨어지는 물커튼을 통해 밖을 볼 수도 있다. 우리는 마침 폭포가동시간에 잘 맞추어 와서 폭포수 물맞이를 하고 옷도 적셔가며 잠시 더위를 잊는다.
폭포를 구경하고 나서 다시 전망대로 올라간다. 이 전망대는 커다란 원형전망대로 절벽에서 운하 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전망대관람로를 따라 입구 반대편에 이르면 김포에서 서해에 이르는 경인운하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고 투명유리바닥을 통해 발아래로 물 흐르는 것도 보며 아찔한 체험도 할 수 있다.
오늘 걷는 시간이 줄어 들어서 점심시간이 좀 일렀지만 날씨도 덥고 해서 얼른 식당으로 들어간다.
마침 맛집으로 알려진 중식당이 전망휴게소 위층에 있다. 아래층에는 카페도 있고. 전망 좋은 식당과 카페가 한 건물에 있으니 편리하다. 이제는 여행제한이 풀려서 주차장에 관광버스도 서 있고 카페에 들어오는 관광객들도 많다.
오늘은 더위를 핑계로 걷는 산책은 줄이고 (이런 더위에 걸어보겠다고 집을 나서는 고령의 엄마들을 염려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그 대신 마을버스로 아파트가 안 보이는 푸른 시골길로 드라이브하고 아라뱃길의 전망 좋은 식당과 카페에서 시원한 중국 냉면 한 그릇과 스무디 한잔으로 잠시 잠시 더위를 잊는 호사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참! 냉방이 잘 된 전철도 있었지? 공항철도를 타려고 이제 계양역 가는 마을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2023년 8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