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회사를 다닙니다
33살. 나는 다섯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 철새라고 놀리는 친구가 있는 반면 부럽다며 비법을 전수해달라는 녀석도 있다. 그들이 보기에 난 평범하지 않았고, 세상은 날 사회부적응자라며 손가락질 할 것이었다. 그래도 즐겁다. 직장 따위야 언제든지 갈아치울 단단한 내공이 생겼으니 말이다. 한 번 그만두기가 어렵지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다.
첫 번째는 웬 사이코 직장 상사 때문에 사직서를 쓰기로 결심했다. 새벽에 출근해서 버스가 끊기는 시간까지 퇴근하지 않는 그 놈의 과장 때문에 내 생활이 피폐해져갔었다. 본인만 회사 지킴이가 되면 될 것을 남들에게도 강요했다. 주말에 등산, 결혼식 등 각종 행사에 나를 초대했고, 못 간다는 말을 전할 때면 왜 그렇게 내 가슴이 철렁하던지. 얼굴이 길쭉하고, 키도 전봇대 같았던 과장은 술도 좋아했다. 저녁식사를 하는데 미친 듯이 자작(自酌)하며 주변을 불편하게 했다. 내가 술을 따르려는 시늉을 하면 신경 쓰지 말라며 나를 비웃곤 했다. 퇴근 후 매일 밤 그만두는 상상을 했지만, 다음날 아침이면 그 녀석의 개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녀야하는 내 신세가 처량했다. 다시 취업을 준비할 용기도 없었고, 어머니께 설명드릴 준비된 변명도 없었다. 이런 제기랄. 수중에 100만원만 있었더라도 사직서로 비행기를 접어 그 과장 녀석 얼굴을 향해 날려버릴텐데.
주말에 혼자 라면을 먹다가 내 20대가 너무나 불쌍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인터넷에서 사직서의 한자를 찾아 서랍에 넣어두었던 흰 봉투에 펜으로 낙서하듯이 적었다. 다음날 출근하여 그 사이코 과장에게 사직서를 던지려는 순간 겁이 나서 옆 자리 대리에게 살며시 봉투를 내밀었다. 그것도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도대체 무엇이 죄송한 건지 난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죄인처럼 그들의 판결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는 요즘 사직서는 사내 시스템으로 처리된다며 컴퓨터로 간단히 이것저것 입력하라고 안내해주었다. 입사를 위해서 준비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그 긴 시간들이 한방에 끝났다. 그것도 단 4분 만에. 왜 그렇게 간단하게 퇴사처리가 되던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인류문명이 야속했다.
그렇게 반 지하 단칸방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시작했다. 차라리 빛이 들지 않는 방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낮인지 밤인지 모르게 누워있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혹여나 빛이 들어왔다면 낮인 것을 알았을 것이고 그럼 출근해야하는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며, 끼니를 제때 챙겨먹어야 하는 몸의 신호에 반응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운 좋게 두 번째 회사를 들어갔고 이번엔 함께 일하는 동료도 좋았고 직무도 꼭 맞는다 생각했지만, 한 4년이 지나자 청개구리처럼 무언가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렇게 또 그만뒀고 새로운 곳으로 옮기자마자 1년도 채 안되어 사직서를 냈다. 회사가 비윤리적이었고 함께 일하는 상사가 비정상이었다. 이쯤 되니 그만두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떻게 되겠지. 누군가는 데려가겠지. 그래서 입에 풀칠은 하겠지라는 확신이 들었다. 정말 풀칠만 할 수 있는 벤처기업도 기웃거렸고 강사를 한답시고 여기저기 쏘다니기도 했다. 그리고는 작가가 되겠다며 책도 멋대로 출간했다. 어느 날 4대 보험 가입증명서를 떼어보니 다양한 이름의 회사들이 인쇄되어 있었다. 나의 훈장과도 같은 흔적들.
언제까지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직장인으로서 대성(大成)하기는 글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어깨를 쓰다듬으며 ‘허망한 미래를 위해 견디지 말고, 지금의 나를 사랑하자’며 나직이 외쳐본다.
33살, 나는 다섯 번째 회사를 다니는 자랑스러운 청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