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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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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진 Nov 08. 2017

청춘마리오네트 #1

태동: 오래된 미래

2층집 주택에 우린 1층이었다. 1층은 우리를 포함하여 세 가구가 살고 있다. 우리 바로 옆집 재복이네, 그리고 우리 맞은편 송씨 할머니네. 1층은 모두 월세를 내고 있었고, 송씨 할머니네가 가장 오래 사셨다. 송씨네 할머니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취업이 되지 않아 맨날 담배나 피며 집구석에서 잠만 자고 있는 신세였다. 쓰고 있는 안경이 맨날 뿌옇게 달아올라 앞이 보이는지 의심될 정도였고, 30대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보였다. 그래도 성격이 좋은 탓에 간혹 나에게 말을 걸곤 하는데, 나는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대문 밖으로 나가버리곤 했다. 그래도 내가 이곳에서 즐거울 수 있는 이유는 재복이 때문이다. 재복이 녀석은 나보다 두 살 아래인데, 내 말도 잘 듣고 생긴 것도 훤칠하다. 이 자식이 어른이 되면 분명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이다. 나도 왠지 녀석과 다니면 주변을 기분 좋게 의식하며 신나게 쏘다닐 수 있다.    


내가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할 때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면면히 깨닫고 있었다. 나는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나처럼 살고 있을 거라는 착각을 아주 오랫동안 했다. 매달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의 일부는 주인집에 상납을 하고, 치킨을 사먹고, 오래된 자동차에 기름칠을 하고. 그러다 돈이 남으면 수준미달인 과목의 점수를 회복하기 위해 나는 학원으로 보내졌다. 그러다 어느 날 밤이면 매우 정기적으로 소주병이 날아가 오래된 벽지와 입맞춤하는  소리(간혹 소주병이 깨지지 않고 튕겨 나와 바닥에 뒹구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마다 아버지는 더욱 힘차게 벽을 조준하여 던졌다)에 잠이 깨고, 어머니는 울고, 아버지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버리고 집을 나가버리는 것이 나의 소소한 일상이었다. 어찌나 반복해서 일어나던지 이제는 내가 혼자서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다. 어느 정도냐면, 어머니의 감정 상태까지 완벽히 소화해서 현장을 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며 배우로 치자면 남우조연상을 받을 수 있는 수준. 내가 이렇게 재밌는 환경에 살고 있을 거라고 친구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 할 것이다. 아니 절대 해서는 안 된다. 그럼 쪽팔려서 학교를 그만둬야하니까.     


  - 재복아, 너희 집 돼지 저금통 밑구멍으로 동전 뽑아서 오락실이나 갈까

  - 저번에는 운이 좋았는데, 이번에도 괜찮겠지 형?

  - 너는 그때처럼 망만 봐.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돼지 저금통을 미친 듯이 흔들어댔다. 밑구멍이 적당히 벌어져있어 동전이 근처까지 오면 손가락을 있는 힘껏 집어넣어 한 놈씩 꺼내는 수법이었다. 한번 손가락을 넣을 때 마다 웬만하면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려고 노력했고, 간혹 지폐도 있었기에 쇠가 아닌 종이가 손에 닿으면 어린 아이 다루듯 천천히 그리고 슬그머니 녀석을 달래면서 밖으로 유인했다.       


  - 재복아, 가자가자! 


누군가 본 사람도 없었고 쫓아오는 사람도 없었지만 내 가슴을 짓누르는 양심이라는 녀석이 나를 달아나게 했다. 재복이는 그저 나를 따라 질주했고, 달리는 시간만큼은 우리가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15분쯤 떨어진 거리에 있는 삼송마트에 도착했다. 그곳은 마트였지만 아이스크림 냉장고 옆 구석자리에 오락기가 두 대 설치되어있었다. 나는 줄곧 비행기 게임에 빠져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동전을 넣고 비행을 시작했다. 나를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을 수차례 피하고, 나를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아이템을 주워 먹었다. 내가 아슬아슬하게 적군의 미사일을 피해 대장을 요격하는 순간, 재복이는 탄성과 함께 손뼉을 쳤다.    


  - 나는 형이 비행기 게임할 때가 제일 멋있어

  - 말 시키지 마, 지금 초 집중 상태야    


내가 세운 최고 점수 기록을 깨려는 찰나, 내 비행기는 추락하고 말았다. 산산조각이 나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 어찌나 가슴 찡하고 허무하던지. 다시 저금통 속에 돈을 가져다 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내가 비행기 게임할 때만큼은 무언가로부터 제약 없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열심히 한 만큼 미사일도 강해졌고, 필살기 무기인 폭탄도 보너스로 주어졌다. 동전 100원만 넣으면 차별 없이 세상을 누빌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평안했고, 걱정이 산더미인 우리 집 공기와는 사뭇 다른 상쾌함을 비행 내내 맛볼 수 있다. 마치 광활한 대지에서 말을 타고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재복이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생글생글 웃기만 한다.    

  - 형, 배고픈데 우리 컵라면이나 사먹을까?

  - 그래, 아이스크림도 같이 사서 놀이터에 가서 먹자    


재복이네 어머니는 이혼하셨는데 남자친구가 생긴 것 같았다. 일주일에 두 번은 낯선 남자가 재복이 집으로 찾아왔고, 그는 택시운전사인지 늘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채로 재복이에게 만 원짜리를 두어 장 쥐어주곤 했다. 재복이는 딱히 싫지 않은지 감사하다며 날름 돈을 받아서 나에게 놀러가자고 달려오곤 했다. 일찍 철이 들어버린 나는, 그런 재복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터졌다. 아버지 없이 살아갈 재복이의 앞날을 생각하면 내 가슴이 답답해졌다. 양아치인지 택시운전사인지 알 수 없는 그 아저씨도 왠지 모르게 싫었고, 재복이 어머니도 원망스러웠다. 나는 그냥 재복이가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길 바랐다. 그러면서도 눈앞에 떨어진 만 원짜리에 마음이 설레는 내 자신을 바라보며 내가 나를 사는 것인지 돈이 나를 사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 재복아, 형이 커서 부자 되면 우리 같이 미국에 놀러가자. 거기는 모두가 평등하대

  - 형, 대한민국도 민주주의 국가 아니야? 그럼 여기도 모두 평등해. 비싼 돈 주고 미국까지 갈 필요 없어

  - 재복아, 거기는 진짜 평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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