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의 시는 ‘어떤 것들의 순환’을 노래하는 듯하다.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적인 무언가와 그 순환의 원리 때문에 피로하였던 나날들. 인간은 그저 흘러가는 물결처럼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시를 보면 ‘팽이’가 나온다. 계속 돌아가는 팽이가 순환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돌아간다. 시에서는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고 표현되어 있다. 팽이는 참으로 신기한 물건이다. 팽이가 도는 건 정말 달나라의 장난일 수도 있고, 상상만 하던 별세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팽이는 왜 계속 도는 것이고, 팽이를 돌 수 있게 만드는 힘의 근원지는 어디일까 궁금했다. 팽이가 스스로 돌 듯이 인간도 스스로 도는 존재이다. 조금 더 철학적으로 답변하자면, 인간은 스스로 도는 ‘실존적 존재’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인간은 어떠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있으며, 또 이를 증명하고 보여줄 수 있다.
<긍지의 날>을 읽어 보면, 인간이 스스로 도는 실존적 존재라서 도달할 수 있는 최종점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 같다. 이 시에는 ‘나의 원천과 더불어 나의 최종점은 긍지’라는 구절이 있다. 긍지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어떻게 해석해봐야 할지 고민이 된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긍지는 설움과 아름다움을 뒤섞이게 만든다. 아니, 어쩌면 설움과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단계가 긍지일 수도 있다. 우리가 순환하는 이유는 긍지에 도달하기 위함이다.
우리의 최종점이 긍지라는 점에서 우리가 단순한 순환의 원리만 거듭하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는 게 증명됐다. 스스로 도는 존재인 팽이는 마치 달나라의 장난 같다. 인간이 사는 세계에서 인간은 스스로 돌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도 인간을 상대로 한 달나라의 장난인가, 아니면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인가. 인간은 긍지로 도달할 수 있기에, 자신의 세계를 꾸려 나가고 맞설 수 있는 것이다. 파도처럼 요동치고, 소리가 없고, 비처럼 퍼부어도 강한 긍지로 살아가면 다 이겨낼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긍지를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게 우리 순환의 목표이다.
스스로 도는 존재인 팽이조차 결국엔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말이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순환을 거듭함에도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죽음’을 떼어놓고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김수영 시인은 죽음에 대해서도 깊은 사유를 하였다. 죽음의 한계 상황을 경험하면서 김수영 시인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충실하게 성찰하는 자세를 보였다. <공자의 생활난>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사물과 사물의 생리와/사물의 수량과 한도와/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라는 부분이 그렇다. 바로 본다는 건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고 바로 보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마지막에 ‘나는 죽을 것’이라는 말은 의지, 결단이 느껴진다. 죽음을 피하지 않고 마주 봄으로써, 인간은 더 각성하고, 생명력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