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뚱그려 표현하는 사랑 이야기
내게 무해한 사람, 그리고 사랑
최은영 작가의 책 <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된 <모래로 지은 집>이라는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사랑’을 의미하는 행위와 감정에 관해서 생각해보았다. 이런 감정도, 저런 행위도 전부 ‘사랑’이라고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게 그것만으로 충분한지, 그리고 그게 과연 사랑이 맞는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저 사랑한다는 말만 들으면 상대의 마음이 나에게로 온전히 와닿는 것인지도 의심이 된다. 사랑만큼 불공평한 감정도 없으니, 사랑으로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 누군가의 내면을 마주하는 것은 어렵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모래로 지은 집>은 온라인 동호회 통신 친구인 ‘나비’, ‘모래’, ‘공무’의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나비’, ‘모래’, ‘공무’는 세 친구가 각자 온라인에서 쓰는 닉네임이었다. 3년 내내 같은 고등학교에 다녔으나 서로의 실명이나 얼굴은 알지도 못했던 그들은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정모 때 만나게 된다. 각자의 일상을 공유하고 불안한 청춘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은 급속도로 친해진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애타게 갈구하고 미워하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 덕에 내가 깨달은 건 하나였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만드는 우리의 메마름과 불완전함이 문제였다는 것을. 그러나 그 메마름과 불완전함이 사랑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처럼 느껴졌다. 그 불완전함 때문에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이고, 사랑이 필요한 것이니까. 모래가 나비에게 남긴 편지는 자꾸만 곱씹게 된다.
'언젠가 너한테 물었잖아. 넌 왜 별칭을 나비라고 했느냐고. 네가 말했지. 나비는 세상 모든 이름 없는 고양이들의 이름이라고. 그냥 길 가는 고양이에게 나비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들이 좋아서 나비라고 했다고. 화를 내면서, 악을 쓰면서 나비야, 나비야, 하진 않잖아,라고. 그래서 나도 너를 부를 때 나비야, 나비야, 하고 어쩐지 다정하게 불렀던 것 같아. 넌 이름 없는 고양이들에게서 너를 봤을까.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배가 고파서 쓰레기봉투를 뜯는, 이름 없는 고양이라는 이유로 해코지를 당하기도 하는 그 길가의 애들에게서 너를 봤을까. (중략) 너희와 있을 때는 나의 좋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나왔어. 그래서 그런 착각도 했어. 나는 나아졌고, 예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너희들에게는 너희가 좋아할 만한 내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어.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식으로 내가 나를 따돌렸던 것 같아. 너희에게 보여주지 못할 정도로 미워 보이고 창피했던 내 모습을 따돌렸어. (중략) 그렇게 거칠게 나를 대하는 게 어른이 되는 것인 줄 알고서.'
이 소설에 나오는 ‘모래’도 누군가를 책망하면서도 그 책망의 무게만큼 그 사람들에게 의존했다. 나는 ‘모래’ 같은 사람이다. 나도 누군가의 무해하고 막연한 온기를 미워하고 의존했다. 늘 나에게 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채워지지도 않는 그 마음에 나도 똑같이 대할 수가 없었다. 사랑은 무해하지만, 막연하다. 그래서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누군가의 무해함은 나를 유해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과거 기억들로 던져버린다. 유해함이라는 나의 치부와 그런 치부를 거칠게 숨기려고 애쓰는 내 모습까지 들켜버렸다는 생각에 괴롭기도 했다.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우리는 남은 차를 마저 마시고 가방을 든다. 구원이니 벌이니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물며 사랑이니 하는 이야기는 더는 입에 올리지 않은 채로, 우리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각자의 우산을 쓰고 작별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 걸어간다. 그렇게 걸어간다.”
이 소설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행위와 감정에 몰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라서? 그 마음은 어떤 끝을 가지고 올까. 우리도 무해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건 아마 우리가 누군가를 계속 사랑하는 한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