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의 숙성
위스키 풍미의 80%는 에이징, 즉 숙성과정에서 오는 오크향이라고 한다.
그러니 숙성이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위스키, 꼬냑, 데킬라 등 숙성을 거치는 주류는 병 라벨에 몇 년 산인지 숙성 기간이 표시되어 있다.
(참고로 와인에 적힌 숫자는 포도 수확년도이며, 위스키에 적힌 숫자는 배럴에 얼마나 오랫동안 숙성되어있었는지를 나타내는 숙성기간이다)
숙성하면 좋다.
술도, 고기도, 김치도, 사람도.
(아 사람은 숙성이 아니라 성숙이었나?)
아무튼.
숙성이란 과정이 주는 신비로움이 있다.
일정 기간동안 잠들어있으면서 쏙쏙 빨아들인다.
그러면서 점점 깊은 풍미와 특이한 향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제는 초콜릿도 숙성한다.
우리가 맛을 볼 때 후각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코를 꽉 막고 눈을 감은 채 양파를 씹으면 사과와 비슷하게 느낀다고 하니 말이다.
게다가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커피 향을 맡음으로써 커피를 마신 것처럼 잠이 깨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초콜릿을 밀폐용기에 보관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
짝짝짝, 칭찬해드려요.
정답은 초콜릿이 주변 냄새를 굉장히 잘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한국인의 경우 냉장고에 보관할 때 더욱 신경을 써야하는 이유가 있는데 강한 향을 내뿜는 마늘이나 김치, 반찬의 냄새를 초콜릿이 쏴악 흡수해버리기 때문이다.
초콜릿의 오일 성분인 '카카오 버터'는 향을 잘 흡수하고 품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초콜릿을 보관할 때 밀폐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곧, 이 특성을 이용해 실험을 해 볼 예정이다)
오크통에 숙성을 할 때는 오크통에 든 물질의 오일 성분이 그 나무의 향을 흡습하는 주요 역할을 한다.
그럼 향을 잘 흡수하는 성질의 초콜릿을 오크통에 보관하면 어떻게 될까?
바로 그 어마무시한 향이 초콜릿에 스며드는 것이다.
특히 다크 초콜릿의 경우 아주 긴 기간동안 숙성 및 보관이 가능한데, 다크 초콜릿의 성분 중에 쉽게 상하는 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밀크나 화이트 초콜릿의 경우 유지방이 산패해버린다)
이미 만들어진 제품은 빨리 섭취하는 걸 권장하지만 다크 초콜릿에 풍부한 항산화 성분이 포함된 것을 생각해보면 다크 초콜릿 자체가 빨리 상하는 식품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풍미를 품고있는 카카오 버터에서 그 풍미가 날아갈 수는 있기 때문에 맛의 변화는 생길 수 있다. (특히 보관 상태에 따라 차이가 크다)
https://pubs.acs.org/doi/abs/10.1021/jf901457s 해당 링크의 연구에 따르면 80년이 된 카카오 파우더와 116년이 된 카카오 빈에서 여전히 높은 수준의 항산화 성분과 플라보노이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무조건 오래가 좋은가?
같은 위스키를 동일한 기간동안 같은 오크 배럴에서 숙성시켜도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같은 과정을 거쳐도 여러 변수로 인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무조건 오래 숙성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과도한 숙성은 오히려 풍미를 망칠 수도 있다고 한다.
위스키나 와인이 오크통 안에 있을 때 온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운 날 모공이 넓어지는 것처럼 온도가 올라가면 나무의 기공이 살짝 열리면서 그 사이로 술이 스며든다. 그리고 온도가 떨어지면 다시 나무 기공이 좁아지면서 흡수했던 술이 빠져나온다. 자연스러운 계절의 변화로 이러한 순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참고: https://www.diffordsguide.com/en-au/encyclopedia/482/bws/barrel-ageing-cask-maturation-of-spirits)
초콜릿의 오크통 숙성
초콜릿의 경우 액체는 아니지만 카카오 버터의 성질로 인해 이미 굳은 형태로서도 향을 잘 흡수한다.
To'ak 이라는 초콜릿 브랜드가 있다. 2013년에 처음으로 초콜릿 숙성을 시작했다고 한다.
To'ak chocolate에서는 이미 완성된 형태의 초콜릿 바를 오크 배럴에 숙성시킨다고 한다. To'ak에서는 에콰도르의 퀴토Quito 지역에서 약 20도를 유지하며 (1도 전후로 차이 발생) 초콜릿 숙성을 진행시킨다. 퀴토 지역은 평균 기온이 약 18도씨라고 하는데 초콜릿에게 너무나 적합한 온도이다.
(참고: https://toakchocolate.com/blogs/news/how-to-age-chocolate)
최근 초콜릿 이야기를 하다 개인적으로 교류가 생긴 Urku chocolate에서는 에콰도르 산지의 트리투바 초콜릿을 다룬다. Urku의 오너 Seb은 에콰도르에 있는 자신의 카카오 부지에서 (정확히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aged chocolate을 연구한다고 하는데 우선 urku 가게에서 판매중인 aged chocolate은 Herencia chocoalte이라는 에콰도르산 초콜릿이다. Seb과 짧게 대화를 나누던 중 초콜릿 바를 나무통에 바로 숙성시키는 것에 대해 언급했는데(To'ak의 방식처럼) Seb은 초콜릿 바가 아닌 카카오 상태에서 숙성시킨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말해주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Herencia의 초콜릿은 Fino de Aroma 카카오 품종으로 만들어지며, 1개월, 3개월, 6개월 삼나무(Cedar wood, 세다 우드)에 숙성한 제품이다. 카카오의 특성인지 삼나무 에이징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은은하게 감싸는 나무향에 더해 엄청난 과일향과 견과류 맛을 뽐낸다.
자세한 후기
초콜릿과 카카오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발효에 어떤 과정을 첨가하느냐에 따라서 결과물 초콜릿이 엄청난 과일을 내뿜을 수도 있고,
숙성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또 색다른 풍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파도 파도 끝이 없는 너란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