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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지한 초콜릿 Dec 21. 2023

초콜릿 꽃이 맺히다.

한 조각의 초콜릿이 되기 어려워


아름다운 것들은 연약하다.

많은 관심과 케어가 필요하다.


테오브로마 카카오 나무의 가지에 하얗고 붉은빛이 도는 작은 꽃이 맺힌다.

그 꽃은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통통한 카카오로 성장한다.

카카오 포드 안에는 하얗고 달콤한 카카오 과육이 단단한 카카오 씨앗을 감싸고 있다.


-


카카오나무는 자웅동체이다. 

그러나 같은 나무에서 열린 수꽃과 암꽃은 서로 만나도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나무의 수꽃과 암꽃을 서로 만나게 해주어야 열매를 볼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꽃은 그냥 맺혔다고 해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꽃이 수분을 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카카오, 역시 만만치 않다.


카카오 나무는 연간 대략 25만 개의 꽃봉우리를 맺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중 10% 정도만이 수분을 한다.

그러니까 90%는 수분을 맺지 못하거나 수분하기에 충분한 꽃가루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카카오 꽃이 수분을 맺기 어려운 요인이 몇 가지 있다.

카카오 꽃은 크기가 매우 작고 구조가 복잡하게 생겼다. 그리고 그 꽃을 수분시키기 위해서는 아주 정교한 과정이 요구된다. 


(사진 출처: cacaopollination.com)


위의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카카오 꽃의 크기는 매우 작다.

사진의 오른쪽 흑색 부분에서 왼쪽은 수꽃(수술)이고 오른쪽은 암꽃(암술)을 보여준다.


카카오 꽃은 같은 나무에서 자란 수술과 암술 사이에서는 꽃가루를 주고받는다 하더라도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교차 화분을 해주어야 한다.


하나의 카카오 나무의 꽃가루를 다른 카카오 나무의 꽃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매개체가 필요한데, 보통 다른 식물의 경우 바람, 나비, 벌 등이 그 매개체 역할을 해준다.

하지만 카카오의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카카오의 꽃가루는 바람으로 운반되기에는 너무 끈적하고 무겁고 진득하다. 바람 땡!

나비와 벌이 카카오의 꽃가루를 운반해주기에는...꽃의 크기가 너무 작다. 땡 벌! 땡 나비!


그래서 어떻게 화분을 맺으라는 건지..?

 

악어새만 악어의 이빨 속에 들어가 찌꺼기를 빼낼 수 있듯이, 자연에는 오직 그 역할만을 수행하도록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카카오의 작은 꽃에 들어갈 수 있는 특정 곤충이 있는데 이를 'biting midge먹파리' 또는 'sandfly샌드플라이'라고 한다.

카카오 열매의 수분을 도와주기 위한 곤충으로서 그것들은 2-3mm보다 작은 크기여야하며, 

털이 북슬해서 카카오 꽃가루가 그들의 몸에 붙을 수 있어야 하고,

카카오 나무가 자라는 습한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샌드 플라이를 검색해보면 사람에게 유익할 것은 없고 따지자면 해로운 아주 자그마한 곤충이다.

이들은 파리과지만 모기처럼 흡혈을 해서 간지러움을 일으킨다.


파리든 모기든 세상 하나 유익할 것 없는 곤충 같지만, biting midge가 열대우림에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달콤하고 맛있는 초콜릿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있지 않을까?

(초콜릿이 없어도 다른 맛있는 게 많다는 말은 참아주시길 바란다. 초콜릿의 발전은 문명의 발전과도 연관되어 있으며, 초콜릿이 없는 세상은 아무런 간이 되어있지 않은 퍽퍽한 빵과 물만 먹는 삶과도 같으니까.)


아무튼 이 작은 곤충은 카카오 폴리네이터pollinator로서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데 사실 이놈들 마저도 완벽하게, 또는 온전히 카카오 꽃의 수분을 행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의 식물들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가?

뭔가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모습이 상상이 된다.

사실 카카오 꽃도 크기가 작아서 그렇지 자세히보면 엄청 화려하고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biting midge들은 카카오 꽃 이외에도 다른 아름다운 꽃들에 둘러쌓여 있기 때문에 굳이 카카오 꽃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까 카카오 꽃은 다른 꽃들과 미모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카카오 꽃이 통통한 카카오 열매로 자라기 위해서는 약 100~250개의 꽃가루 알갱이를 필요로 한다. 그에 반해 한 마리의 biting midge가 운반할 수 있는 꽃가루는 약 30개 정도이다.


그리고 앞서 설명한 바처럼 카카오 꽃들은 같은 나무에서 자란 꽃끼리는 꽃가루를 받아도 수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곤충이 한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꽃가루를 싣고 옮겨가야 한다.


이렇게 과정이 복잡하고 확률적으로 어려워보이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초콜릿이 우리 주변에 있는 건지 사실 나도 궁금하다. 카카오 열매 하나가 자라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확률을 거치고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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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열매를 맺기 힘들다고 초콜릿을 먹지 않을 수는 없는 법!

위의 어려움들을 보완하기 위해서 관련자들은 biting midge들이 서식하고 번식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그것들에게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카카오 꽃을 수분한다.


그렇다.

자연 수분을 곤충이 다 못해내면 사람이 도와야지.


우선 사람이 개입하는 영역 중 첫번째는 biting midge들의 서식 환경을 최적으로 관리해주는 것이다.

습하고 축축한 흙과 환경을 유지시키고 곤충이 그곳에 알을 낳을 수 있도록 한다.

biting midge들은 잘려나가 썩어가는 바나나 줄기나 수확 후 버려져 썩어가는 카카오 포드 안에 알을 낳기도 하기 때문에 바나나 줄기를 근처로 가져다 두자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직접 손으로 수분을 도와주는 방법도 있는데, 사람이 직접 수꽃에서 꽃가루를 가져와 암꽃으로 가져다준다. 암꽃은 수꽃보다 안쪽으로 숨어있고 꽃자체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매우 정교하고 미세한 작업이라 핀셋이나 족집게 등을 이용한다. 



(사진 출처: https://www.thechocolatejournalist.com/blog/cacao-pollination)



이렇게 직접 수분을 해주는 방법은 정확하기도 하고 카카오 생산성을 어마무시하게 늘려주었다.

따라서 많은 농경학자들이 이 방법을 카카오 재배 과정에 아예 포함되는 작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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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은 연약하다.

많은 관심과 케어가 필요하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은 초콜릿 소비자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 글을 읽은 이후로 한 조각의 초콜릿을 볼 때면 카카오 꽃과 그 꽃이 얼마나 어렵게 열매를 맺었는지 떠오를 것이다.




원문 참고: https://www.thechocolatejournalist.com/blog/cacao-poll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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