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le-Variety Cacao
초콜릿에 관심이 있다면 싱글 오리진, 싱글 에스테이트 등의 용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이 용어들은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의 생산지에 대한 정보다.
싱글 오리진Single origin은 단일 국가에서 생산된 카카오를 뜻하며, 예를 들어 베네주엘라 또는 마다가스카르처럼 카카오가 생산된 국가가 표기된다.
그런데 한 국가 안에서도 카카오를 재배하는 농경지와 농장은 여러 곳 존재한다. 그래서 이러한 단일 농경지(또는 토지, estate)에서 재배한 카카오를 사용했다면 싱글 에스테이트Single estate로 표기한다.
Estate는 넓은 의미로 토지, 소유지 등의 뜻을 가지는데 이 안에도 개별적으로 '농장farm'이 존재한다.
따라서 더 범위를 좁혀 한 농장farm에서 재배한 카카오로 만든 초콜릿은 (흔히 구하기는 어렵지만) 싱글 팜Single farm 초콜릿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단일 품종, 싱글 버라이어티Single-variety 카카오는 무엇일까?
-
기본적으로 카카오 열매는 나무에서 자라는 '과일'이다.
특이한 점은 카카오 열매는 다른 과일 나무의 열매들처럼 가지에서 자라지 않고 나무의 몸통에 바로 열매가 대롱대롱 맺힌다. 그래서 카카오 열매가 열린 카카오 나무의 사진을 보면 나무 몸통부터 벌써 카카오 열매들이 매달려있다.
(이미지 출처: thechocolatejournalist.com)
-
하나의 과일 아래에도 굉장히 많은 '품종'이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사과에 청사과, 홍옥, 후지, 부사 등등 나열할 수도 없이 많은 사과의 품종이 있고, 딸기, 망고 등 모든 과일이 마찬가지고, 같은 과일이라도 그 품종에 따라 맛이 차이난다.
과일인 카카오에도 품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카카오의 재배는 그렇게 단순하거나 쉬운 것이 아니다.
카카오가 자라는 환경은 열대/아열대 기후이며 자신보다 키가 큰 나무가 주변에서 직광을 막아주어야 한다. 여러 까다로운 조건과 병충해에 약한 특성 때문에 카카오는 '접목'을 많이 한다. 접목을 통해서 원하는 종류의 재배를 조절할 수 있고 덕분에 단일 품종 카카오의 생산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재배 과정을 컨트롤 할 수 있으면 재배 후의 과정인 발효, 로스팅, 콘칭 등의 과정도 특정 카카오 빈에 더욱 적합한 방식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
왠지 초콜릿이라고하면 크게 특색이 다른 맛을 생각해보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청사과와 홍사과를 떠올려보자.
둘 다 '사과'이고 사과 특유의 맛을 가지지만 두 사과의 맛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청사과로 애플파이를 만들면 홍사과로 애플파이를 만든 것과 맛의 차이도 분명하게 날 것이다.
그럼 이제 카카오 A와 카카오 B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카카오를 재배하는 농부가 본인이 재배하는 카카오가 A품종인지 B품종인지, 아니면 두 품종이 섞였는 지도 모른 채로 재배하고, 수확하고, 발효, 건조 등등의 과정을 거치면 분명히 그것을 알고 재배한 것과 결과물의 차이가 날 것이다. (마치 기르는 사과가 청사과인지 홍사과인지 모르고 기르는 것과 같다)
단일 품종 카카오는 더욱 균일하게 발효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좋은 맛을 낼 수 있다.
품종이 섞인 카카오는 제각각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균일하게 발효를 하기 어렵다.
발효 외에도 수확 후의 과정들을 표준화할 수 있는 것도 당연히 단일 품종 카카오의 장점이다.
과정이 균일화, 표준화가 되면 만들 때마다 일정한 결과를 낼 수 있는 것 또한 장점이다.
-
그렇게 장점이 많으면 왜 모든 카카오 재배가 단일 품종으로 이루어지지 않는걸까?
우선 단일 품종이 아닌 재배보다 단일 품종 재배가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재배하고자 하는 종의 카카오 품종을 찾아야하고, 단일 품종의 개성을 살리는 만큼 그 카카오 자체가 훌륭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단일 품종보다 섞인 품종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카카오의 재배는 우습게 볼 수가 없다.
카카오의 재배와 환경에 대한 조사를 하거나 글을 쓸 때마다 '쉽지 않음'이 느껴지는데 어떻게 우리는 슈퍼나 마트만 가도 진열장에 주르륵 나열된 수많은 초콜릿을 볼 수 있는걸까?
그만큼 대중적인 간식의 대명사인 초콜릿이니까 '생산성'을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생산성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품질에 양보를 해야하고, 너무 고급의, 품질이 우수한 재배만을 우상시하면 과연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 일반적으로' 초콜릿을 즐길 수 있을까? (*카카오 재배의 생산성을 위한 환경 파괴와 노동 착취를 옹호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진지한 초콜릿의 글들을 읽어본다면 좋은 카카오와 초콜릿에 대한 진촠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원하는 품종의 카카오를 찾은 후에는 그 카카오를 '제대로' 기르고 재배할 수 있도록 사람들을 고용하고 교육 및 훈련을 해야한다. 게다가 카카오 나무를 심었다고 금방 열매가 뿅! 하고 나는 것도 아니다.
-
초콜릿 산업에 항상 존재해온 이분적 대립이 '품질 좋은 카카오의 적은 생산성'이냐 '품질은 떨어져도 대량 생산'이냐이다. 현재 단일 품종 카카오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Xoco Gourmet'의 설립자 Frank는 품질 좋은 카카오의 생산성을 높이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긴다.
단일 품종이라는 것은 무조건 단일 지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홍옥이 한 국가의 한 지역에서만 자라야만 하는 것이 아니듯이 단일 품종은 다른 국가, 다른 지역에서도 자랄 수 있으며 대체로 그 성질과 맛을 동일하게 유지한다.
Xoco Gourmet에서는 'Mayan Red'와 'Tuma Yellow'라는 두 품종의 카카오를 선택하여 단일 품종의 품질 좋은 카카오의 생산성 높은 재배를 시도 중이다. (아직 그 결과로 나온 초콜릿과 판매 상태에 대해서는 모른다)
-
초콜릿의 세계는 공부하면 할 수록,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몰랐던 영역이 많은 것 같다.
셰프의 입장에서는 좋은 초콜릿을 받아서 사용하고 그것으로 좋은 음식을 내는 것에 집중한다면
초콜릿 생산을 위한 카카오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는 카카오를 사랑하는 자들은 카카오 농장과 재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실험하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좋은 초콜릿의 가격대가 그렇지 않은 초콜릿의 가격보다 비싼 것도 카카오 농장에서 농부들에게의 좋은 환경 조성과 직업적 대우를 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카카오 종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대우와 환경이 주어지지 않으면 좋은 초콜릿이 나오는 것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