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지식으로 쓰는 핀란드 교회 이야기
지금껏 살면서 핀란드의 교육, 복지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봤지만 단 한번도 종교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카톨릭 국가이니 '핀란드에 가도 성당이 많겠구나!' 정도로만 생각해왔었죠. 지난 8월 헬싱키 여행을 하다가 택시기사에게 'helsinki catholic church'에 가자고 했더니 기사가 아리까리한 표정을 짓더군요.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헬싱키 대성당이 그 성당이 아니라는 것을!
엄밀히 말하자면 헬싱키 대성당은 헬싱키 루터교회입니다. 그리고 핀란드는 루터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입니다. 그럼 루터교는 무엇일까요? 아, 참고로 전 세계사를 무척 못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나마 루터에 대해 기억하는 내용이 있다면 천국 티켓(면죄부)를 파는 교황청에 반대했던 분(?)이 루터였다는 것. 구원은 '오직믿음'로 얻는다고 주장하며 종교개혁을 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
국민의 80%가 루터교인 핀란드에서는 자신이 주거하는 지역교구별로 교회세를 냅니다. 얼마전 핀란드 공영방송 YLE 뉴스에 따르면 제가 사는 로바니에미 교회세는 소득의 1.2%로 동결됐다고 합니다.
더 놀라운 건 핀란드 공영방송인 YLE 1채널에서는 (KBS 1 채널 같은거라고 보면 되겠죠?)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예배 실황을 라디오로 내보낸다는 사실입니다. Radio RovaDei라고 하는 지역방송에서도 아침 9시 55분부터 정오까지 예배를 중계하고요.
국교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곳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학기초, 남편을 따라 오리엔테이션에 함께 참석했는데, 공식 순서에 Student Paster(학생목사)가 나와 자신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Opening service(개강예배)를 홍보하는 시간을 갖더군요.
그때 알게된 Heini라는 학생 목사에게 "안녕? 나는 여기에 오기전 매주 교회를 나갔는데, 니네 교회 공사중이더라? 심지어 나는 애도 있어, 여기서는 어떻게 교회 가야돼?"하고 무작정 메일을 보냈는데 통역 서비스 안내부터 아이와는 2층에서 예배드리면 된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습니다. 알고보니 학생이 아니라, 아이 넷을 가진 젊은 목사님이었습니다. 즉 이곳에서 지역교회는 지역학교를 관할하는 역할까지 두루두루 하고 있었습니다. 덧붙여 지역주민의 결혼과 장례까지 모두 교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교회 홈페이지에는 장례 안내까지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기까지 하니, 제겐 신기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루터교는 알면 알수록 흥미롭습니다. 개신교의 출발이기도 하고, 개신교에 속해있기도 한데 오히려 카톨릭 신자가 루터교 예배에 가면 성당의 미사 형식과 비슷하다고들 합니다. 촛불을 켜놓는 문화며, 목회자가 로만칼라(신부님 셔츠 목부분에 달린 하얀 사각형 깃)를 착용하는 것까지도 왠지 천주교와 더 가까운 풍경입니다.
예배당에 들어가면 찬송가(Virsi kirja)가 뒤편에 꽂혀 있는데 책 뒷표지에 써있는 무언가를 외우길래 사도신경인가보다 하고 번역을 해보니 니케아 신조(325년) 였습니다. (사도신경도 말씀 후에 함께 외웁니다) 이는 개신교에서 나름 중요한 기조가 되는 신조(creed)로, 과거에는 이단과 정통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사도신경의 조상뻘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쯤되니 짧은 종교지식을 가진 저이지만 교회사가 무척 궁금해집니다. 알아보니 로마교회에서 독일루터교와 영국성공회가 분리해 나왔고 영국성공회에서 감리, 침례, 성결교가 파생됐습니다. 장로교는 루터교와 비슷한 시기에 개혁운동으로 생겨났고요. 현재 개신교는 루터교와 기타 여러 교단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수정요청 해주세요^^) 참고로 로바니에미 안에는 교회가 총 2개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루터교회와 더불어 동방정교회(Ortodoksinen kirkko)가 그것입니다.
다시 헬싱키 대성당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 건물은 본래 러시아의 지배를 받을 당시 러시아정교회 건물로 지어졌지만 현재는 루터교회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 건물이 정교회 성당이 되었다가 루터교회 건물이 되었다가 하는 모습 하나만 봐도 핀란드는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참 사연이 많은 나라입니다.
한편, 최근 핀란드 루터교도 동성애 이슈로 내부가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2014년 12월, 핀란드 루터회 대주교가 동성애 옹호 발언을 하면서 루터교단을 탈퇴하는 국민들이 잇따르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기사링크) 핀란드에서 루터교를 탈퇴한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지역교회세를 내지 않고, 그에 따른 혜택도 포기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루터교에 대해 조사하다보니 내년이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국에서는 내년 1월, 영화 '루터'가 개봉될 예정이라고 하고요. 남편한테 '2차 종교개혁'이 필요한 시대라는 말도 하기도 했었지만, 여러모로 최근에 부쩍 시끄러운 한국 교회에서 벗어나 초기 개신교의 모습으로도 볼 수 있는 루터교를 통해 개인적으로는 여러 생각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아무쪼록 더 많이 알아가고 싶습니다. 핀란드인들은 어떤 생각과 정신을 가지고 이토록 기초가 튼튼한 나라를 만들어가는지 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