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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ncstory Oct 01. 2016

8화. 나는 '자발적 난민'입니다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가볍게 시작한 글 연재지만 책임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작은 것만 보고 전체라고 말할까 두렵고, 잘못된 북유럽 환상을 누군가에게 심게 될까 그렇습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한국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사명감 아닌 사명감도 있습니다. 마침 얼마전에 영유아 검진을 다녀온지라 자료도 번역하고 나름 핀란드와 한국의 이유식 비교표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보성 글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오늘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자유롭게 써내려가볼까 합니다. 조금은 무거울 수도 있습니다.

2013년 9월, 신혼여행 차 크로아티아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만난 인형처럼 눈이 커다란 한 아이를 기억합니다. 그 아이는 불안증세라도 보이듯 칭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앞 좌석에 앉아있던 젊은 부부는 아이를 안고 얼르며 구름 속에서 사정 없이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신문을 보고 있던 저희 남편을 보고 물었습니다. "오바마가 공습 발표를 했나요?" 그들은 시리아 가족이었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입고 있는 옷이나 외모가 꽤 부유해보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요즘처럼 시끄럽게 시리아 난민 문제를 뉴스로 접하기도 전, 잠시 위험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젊은 부부와 아이. 시리아 뉴스를 볼 때면 그 가족이 무사히 살고 있을지 가끔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2016년 9월, 남편 학교에 같이 갔다가 동네 길을 익혀보겠다며 유모차를 끌고 1시간 동안 무작정 집으로 걸어오던 날이 있었습니다. 동남아인 정도로 보이는 10대 여자, 남자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노래를 부르며, 엉덩이를 흔들고, 춤을 추며 강 위의 다리를 함께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남자아이가 뒤를 힐끔힐끔 돌아보다 고개를 돌려 제게 묻습니다. "Are you Korean?

그렇다고 대답하니 갑자기 10대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케이팝을 너무 좋아한댑니다. 그래서 누구 좋아하냐니까 'Got7, EXO, BTOB...' 난리가 났습니다. 너희는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아프간에서 왔다고 합니다. 아직도 길거리에서 보이는 저 사람이 핀란드 사람인지, 러시아 사람인지 구분도 안되서 '걍 몽땅 외국인' 카테고리에 묶어버리는 제가, 아프가니스탄 사람을 언제 만나봤겠습니까.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핀란드에는 시리아계보다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이 많이 옮겨와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작은 핀란드 시골 마을 안에도 그들은 가족 단위로 많이 옮겨와 살고 있습니다.


한편 요즘은 서고 싶고, 걷고 싶어 아주 피가 철철 끓어 오르는 7개월 아들 놈과 하루종일 놀아주는 것이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저는,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핀란드판 '문센(문화센터)' 수업을 찾다가 MLL이라는 아동NGO 단체에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센터 직원은 아이와 함께하는 요가 수업을 추천해주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머뭇거리고 있는 새  다른 프로그램을 소개해 줍니다. 월요일은 핀란드 맘스 카페가 있고, 수요일은 인터네셔널 맘스카페가 있는데 오늘 마침 모임이 있으니 가보라고 제안합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모임 장소의 문을 열었는데 히잡을 둘러 쓴 여인이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핀란드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 곳에는 아이엄마는 그 여자 한명 뿐이었습니다. 인터네셔널 카페라고 했지만 난민과 이주민만 있었습니다. 겁 많은 제 눈에는 인상 안 좋은 아랍계 아저씨들도 뜨문뜨문 보였습니다. 마음이 좀 복잡했습니다. '나는 저들과 달라'라는 마음을 가지면 왠지 죄가 되는 것 같고, 그렇지 않다고 하기엔 그곳에서 함께 어울릴 수가 없었습니다. 학생도 아니고, 난민도 아닌 '유학생 와이프'는 어느 사회에 소속될 수 있을까요? (한인교회 말씀하지 마셔요...한국인도 없습니다...)


이 복잡하고 치열한 삶의 시간 중에 한국 뉴스는 보고 싶지 않아도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립니다. 최근 고인이 되신 어느 분을 부검하겠다는 소식을 보았습니다. 사실 지금까진 그 문제는 '과잉시위'에 '과잉진압'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사안이었습니다. 하지만 페이스북 뉴스 피드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존엄한 생명을 가진 한 인간을 향해 직수로 내뿜는 물호스 사진)을 보고 다시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리고는 불현듯 옛 기억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결혼 전, 창문 틈으로 자취방에 벌 한마리가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벌 한마리를 잡겠다고 새로 산 홈키파 한 통을 하얀 진액에 몸이 냉각되어 죽을 때까지 쏟아부었습니다. "아, 죽었다!"하고 안심하고는 벌을 멍~하니 내려다 봅니다. 하얗게 얼어붙은 벌 한 마리... 그 벌은 과연 저를 죽일 생각이었을까요?


인터넷 한국 맘(mom)카페에서는 '오늘 미세먼지가 많은데 나가도 되겠냐'고 묻는 글이 꾸준히 올라옵니다. 얼마 전에는 저도 써본 적 있는 아기 물티슈에서 그리고 치약에서 가습기 살균제가 검출됐다고 시끄럽습니다. 시차가 맞지 않아 조용해야 할 시간에 친구들이 아직도 야근을 한다며 SNS에 글을 올립니다. 70대 노인이 '니가 임산부가 맞냐'며 임산부 옷을 걷어 올리고 발로 가격했다는 기사를 봅니다. (참고로 전 임신 중에 대중교통에서 양보를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지진 예방 비용을 예산에 넣느니, 차라리 복구 비용으로 쓰는게 경제적"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온 몸에 힘이 쑥 빠집니다.


쓸데 없이 말이 길어졌습니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정말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난민입니다. 자발적 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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