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포기하지 않을 나만의 이유

by 제발버터

그날도 연락이 닿지 않는 대상자 명단을 붙잡고 한참을 고민했다.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들려오는 건 똑같은 안내음 뿐이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텅 빈 수화기 너머로 기계음만 메아리처럼 울렸다. 결국 문자를 보낸다.

‘이번 주까지 못 받아도 괜찮으니, 회신 부탁드립니다.’

그리고는 망설이다가 내 개인 휴대폰 번호까지 적었다. 민원인에게 개인 연락처를 알려주지 말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지금은 그보다 ‘연락이 닿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다. 잠시 후, 저녁을 먹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제가 일을 해서요. 9시 전에 가도 될까요?'

그 한 문장이 왜 그렇게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주민센터에 도착했다.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민원인은 9시가 다 되어 조용히 들어와 오만원짜리 상품권을 받아갔다. 짧은 인사 한마디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돌아서는 뒷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이 스쳤다.

'대체 이 상품권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나는 저사람에게 무엇을 바래서 이렇게까지 했을까’

당신 때문에 평소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기다렸는데 한마디도 없이 가버리는 민원인에게 서운한 감정마저 들었다. 그저 제때 전달해야 할 업무중 하나를 수행했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서운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수고를 계속할 수 있을까.


그러던 중 한창 실시간 1위라는 드라마 중증외상센터를 보았는데 내 마음을 꿰뚫는 장면이 있었다. 응급수술이 끝난 심야, 의사 백강혁이 인턴을 식당으로 불러 밥을 먹이며 말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죽음에 뭐 이렇게까지 수고를 해야 하나...
나도 열나게 고민했던 부분이라.
뭐 좀 오글거리지만, 너도 너만의 이유를 찾아.
개같이 구르고 엿같이 깨져도 절대로 변하지 않을 그런 이유.
이 퍽퍽하고 꺼끌꺼끌한 길을 아무런 이유 없이 걸어가기엔 너무 고되다.”


드라마니까 가능한 대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중증외상전문의로 치열하게 살아온 이국종 교수님의 스토리가 떠올랐다. 누군가는 정말 저런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겠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그 말은 생명을 구하는 의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직장인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나만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스스로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어쩌면 나는 백강혁처럼 ‘왜 사회복지공무원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저 ‘안정적인 직장이니까, 돈 받으며 좋은 일 하니까’ 그 정도로만 생각해왔다.

그래서일까, ‘포기하지 않을 나만의 이유’는 아직 정답을 내리지 못한 채 어딘가를 맴돈다.


어쩌면 정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을 해야하는 이유가 될 지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도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는 대상자 명단이 눈에 띈다. 그래도 매일 출근 후, 전화를 걸고 문자를 남긴다. 어쩌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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