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최근에 구청에서 안내문 받으셨죠? 서울형 기초보장 재조사 때문에 동으로 한번 오셔야 해요. 네, 감사합니다~”
서울형 기초보장은 국가 제도에서 빠진 사람들을 돕는 서울시의 복지사업이다. 생활이 어렵지만 기준을 조금 넘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제도로 매년 재신청이 필요하다. 그날도 통지서를 들고 한 남성이 내 창구로 들어왔다. 오십대쯤 되어 보였고, 얼굴에는 어딘가 인자한 기운이 묻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오셨어요?”
그는 어휴, 어휴— 하며 통지서를 내밀었다. 순간, 속으로 상담이 쉽지 않겠구나를 느꼈다. 민원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니 뇌병변으로 인한 언어장애가 심한 분이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가족이나 활동지원사가 함께 오시지만, 그는 혼자였다.
“이 통지서는 다시 수급자 신청을 하라는 뜻이에요. 서류 드릴 테니 작성하셔서 가져오시면 돼요. 이해하셨어요?”
그는 깊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이해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 현재 주거 형태는 자가세요? 전월세세요?”
또다시 한숨. 그리고 고개 끄덕임. 상담은 진전이 없고, 뒤에서 대기 중인 민원인들의 무언의 압박에 나는 점점 다급해져만 갔다.
급히 종이를 꺼내 가족이나 연락 가능한 분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말했다. 그가 써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가족이 아닌 친구가 받았다. 사정을 설명하자 그 친구 분이 말했다.
“저희가 셋이서 이 친구 도와주고 있어요. 서류는 저희가 같이 해드릴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나는 민원인에게 서류를 건네며 굵은 글씨로 직통번호를 적었다.
“여기 제 번호예요. 친구 분이랑 작성하다가 모르면 꼭 전화 주세요. 꼭이요!”
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눈빛에는 어렴풋이 이해의 기색이 비쳤다.
며칠이 흘렀다. 사무실 전화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저 000 친구입니다.” 새로운 목소리의 남자3은 지방에서 버스기사를 하며 가끔 서울로 올라와 친구를 돕는다고 했다.
“저 말고도 친구 두 명이 더 돌아가면서 봐요.”
그의 말에 가슴이 조금 먹먹해졌다.
서류 제출 기한이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초조해졌다.
“이번 주까지 안 되면 수급 중지될 수 있으니 꼭 부탁드려요.”
나는 친구 분에게 전화를 걸고 또 걸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언젠가부터 이분은 내 전담 민원인이 되어 있었다.
가끔은 피로가 몰려왔다. 다른 민원 중에도 전화가 울리면 속으로 짜증이 올라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친구 셋이서 지방에서까지 도와주는 상황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누그러트렸다.
“그래, 친구분들도 저렇게 지방에서 돕고 있는데 내가 짜증을 내면 안 되지.”
그날은 이를 꽉 물고 친절함을 유지했다.
그리고 드디어 서류를 제출하는 그 날이 왔다.
아침부터 나는 친구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 점심시간은 이때니까, 그 시간은 피해 오세요.”
이렇게까지 민원인을 기다린 적이 있었나. 전화 통화를 거듭하다 보니 어느새 그와 친구들에게 묘한 내적 친밀감이 쌓여 있었다.
오후 세 시쯤, 출입문이 열리고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한 명은 내가 알던 바로 그 민원인이었다. 번호표를 뽑자마자 나는 재빨리 호출 버튼을 눌렀다. 띵동—
“아, 제가 000 친구입니다.”
버스기사 친구가 밝게 인사했다. 나도 웃으며 맞았다.
“서류 이상 없습니다. 이제 접수할게요. 다 끝났습니다.”
“아휴, 고맙습니다. 주무관님 아니었으면 못 했을 거예요.”
“아니에요, 선생님이 더 고생하셨죠. 지방에서까지 오셨는데.”
우리의 말을 듣던 민원인은 옆에서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함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번엔 알 수 있었다. 그의 한숨이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감사함’이라는 걸.
돌아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평생을 살면서 친구 한명만 있어도 잘 산 인생이라고 하던데, 그에게는 친구 세 명이 있었다.
지방에서 일을 마치고도 올라와 도와주는 친구들. 그 우정의 깊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는 언어장애가 있기 전, 어떤 말을 즐겨 쓰던 사람이었을까. 어떤 어조로 친구들을 웃게 했을까. 그의 삶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그가 여전히 관계의 언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