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직 공무원이 되면 좋은 점이 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보람? 글쎄다, 그건 가끔 있는 일이고
진짜 장점은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가 생긴다는 것이다. 글감 걱정은 없다. 다만, 정신건강이 조금씩 갉아먹히는 게 문제일 뿐이다.
에피소드 1. “내가 언제 신청했어?”
검은 비니를 푹 눌러쓴 어르신이 주민센터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자기는 복지 서비스를 신청한 적이 없는데 왜 신청이 돼 있냐며 다짜고짜 화를 내셨다.
처음엔 옆자리 주무관님이 부드럽게 설명드렸다.
“선생님, 도움 되는 서비스라 신청되어 있는 거예요. 나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어르신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건 됐고, 누가 내 동의도 안 받고 내 이름으로 신청했냐고.”
목소리가 한 톤씩 올라갔다. 서류를 뒤져보니, 역시나 본인이 직접 서명한 문서가 있었다.
그걸 보여드리자 어르신의 톤이 갑자기 바뀌었다.
“분명 내 글씨가 맞긴 한데... 나는 신청한 적이 없는데...”
주무관님이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선생님이 깜빡하셨나 봐요.”
“맞긴 한데, 참 이상하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미안하게 됐수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사과하시며 나가셨다. 처음부터 그렇게 조곤조곤 말씀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다.
에피소드 2. “니들이 월급 받아서 거기 앉아있는 이유가 뭐야!”
며칠 뒤엔 더 큰 사건이 터졌다.
한 어르신이 연세 지긋한 여성분을 모시고 와서 “치매 검사를 받으러 왔다”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 주민센터에선 치매검사를 하지 않는다. 근로자 선생님이 친절히 안내드렸다.
“어르신, 치매검사는 이쪽 센터에서 가능하세요. 여기 위치랑 전화번호예요.”
그러자 어르신이 말했다. “난 그런 거 예약할 줄 몰라요. 대신 좀 해줘요.”
선생님이 “예약은 본인이 직접 하셔야 해요”라고 말씀드린 순간 세상이 뒤집혔다.
“아니 전화하는게 뭐가 어렵다고, 니들이 월급 받아서 거기 앉아있는 이유가 뭐야!
우리 같은 사람 도우라고 있는 거 아니야!”
순식간에 고성, 욕설, 언성.
근로자 선생님도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언쟁이 붙었다. 결국 우리는 비상벨을 눌러 경찰을 불렀다. 순찰차 불빛 아래에서야 겨우 진정된 어르신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사실, 민원인의 입장도 이해한다. 모든 절차가 어렵고 낯설고, 공무원이 알아서 척척 해주길 바라는 심정. 하지만 우리도 인간이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 다 붙잡고 처리하기엔 행정 처리할 시간도 빠듯하다. 사회복지공무원이 된다는 건, 사람을 돕는 일과 행정을 하는 일 사이에서 늘 그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타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기대와 실망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공시생 시절, 사회복지공무원들이 흑화하는 영상을 종종 봤다. 그땐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건 오버가 아니라 예언이었다.
민원창구 너머로 쏟아지는 고성, 억울함, 원망, 부탁.
그런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 듣다 보면, 내 인류애 게이지가 깜빡깜빡한다.
과연 나는 언제쯤 흑화할까. 그날이 오더라도, 누군가의 사소한 한마디에 다시 웃을 수 있는 마음만큼은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