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서류하나로 등골이 서늘해질때

by 제발버터

신규 공무원이 민원대에서 일하다 보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민원인에게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받지 않고 돌려보낸 걸 깨달았을 때다. 이건 절대 민원인 탓으로 돌릴 수 없는, 100% 내 책임이다. 그 순간 머릿속엔 온갖 상상이 스친다.

‘이거 다시 오라고 하면 분명 화내시겠지. 욕은 기본이겠지...’


사실 나는 두 달 근무 동안 이미 이런 실수를 두 번이나 했다.

첫 번째는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취소하러 오신 분이었다. 신청 취하원을 받아야 하는데, 엉뚱하게 자격 중지 취하원을 받아버린 것이다. 둘의 서류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행정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문서다.

그 사실을 민원인이 떠난 뒤에야 알아차렸을 때,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한참을 고민했다.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냥 내가 해버릴까. 결국 ‘이건 욕먹어도 내 잘못이지’라는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주민센터예요. 혹시 아까 저랑 상담하신 거 기억나시죠?”

“네, 무슨 일이세요?”

“제가 서류를 잘못 받아서요... 정말 죄송한데, 한 번만 더 들러주실 수 있을까요?”

잠시 침묵.

‘이제 시작이다’ 하고 마음을 다잡는 순간,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 네. 지금 옷 입고 바로 갈게요.”

…욕은 커녕 바로 오신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그분이 다시 들어왔다.

내가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초콜릿 하나를 드리자, “이거 뇌물인가요?” 하시며 웃어 넘기셨다. 그 웃음에 온몸이 풀렸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며칠 뒤, 또 사고를 쳤다. 이번엔 다른 민원인의 이름이 인쇄된 서류에 엉뚱한 분의 서명을 받아버린 것이다. 진짜 미쳐버릴 노릇이다.

더 큰 문제는, 이분이 척추 통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민원인이었다는 점이다.

‘와, 이걸 다시 오시라고 해야 한다고? 난 진짜 인간 말종이구나.’

솔직히 그 땐 직접 방문해서 사인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피할 수는 없었다. 전화를 걸며 최대한 조심스레 말씀드렸다.

“선생님... 너무 죄송하지만, 제가 다른 서류에 서명을 받아서요. 다시 한 번만 서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번엔 정말 욕먹을 각오를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또 의외였다.

“아 괜찮아요. 지금 바로 갈게요.”

전화기 너머로 들린 차분한 목소리에 숨이 멎었다.

잠시 후, 그분은 허리를 부여잡으며 주민센터로 들어오셨다. 다시 한번 송구함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허리 괜찮으세요? 제가 정말 죄송해요.”

그분은 미소 한 번 지으며 묵묵히 사인만 하고 돌아가셨다.

그 뒷모습을 보는데, 왠지 가슴이 먹먹했다. 차라리 욕이라도 들었으면 덜 미안했을 텐데.

그 일을 겪은 뒤로, 나는 민원서류를 넘기기 전에 세 번은 다시 확인한다.

조금 늦더라도 꼼꼼히 보고, 실수하지 않으려 애쓴다. 왜냐면 나의 실수 하나가 누군가에겐 또 한 번의 고단한 걸음이 되니까.

전화기 너머로 “괜찮아요”라고 말해주던 목소리, 다시 걸어 들어와 옅은 미소로 사인해주던 손끝. 그분들이 보여준 인내와 따뜻함을 나도 조금은 닮아 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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