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민원대에 있으면 생기는 공무원 직업병

by 제발버터


민원대 업무를 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관련 서류를 내러 오는 분, 단순 문의하러 오는 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분까지.

하루 종일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생긴 직업병이 있다.

먼저 나쁜 것부터 말하자면 상대방의 말을 끊어먹는 습관이 생겼다. 민원 업무를 하다 보면, 사람들의 질문이 비슷비슷하다. ‘아, 이 말 다음엔 이걸 묻겠구나’ 하는 게 대충 감이 온다.

그래서 무심코 중간에 말을 끊고 대신 답을 해버릴 때가 있다. “아 그건요—” 하기도 전에 내가 “그건 이렇게 하시면 돼요!” 하고 말을 던진다. 문제는 이 습관이 업무 밖에서도 나온다는 거다. 친구랑 밥을 먹다가도,

“근데 나 어제—”

“응 어제 그거 잘 해결됐어? 안그래도 그거 생각해봤는데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이런 식이다.

듣는 입장에서는 꽤 답답할 수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민원 창구에서는 효율이지만, 친구 사이에선 예의가 아니다.

그래도 좋은 변화도 있다. 나보다 한참 나이많은 사람들을 대함에도 능글맞음이 생겼다는 점이다. 사회복지 민원창구 특성상 나의 민원인들은 대부분 노인이다. 예전에는 민원인이 말하면 괜히 트러블이 발생할까 봐 긴장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은 능글맞게, 여유롭게 대한다.

노인분이 내게 “에어컨 돈이 많이 나와서 그런데 주위에 들어보니까 에어컨 요금 감면받는거 있다던데 그거 신청 못 해요?” 라고 문의한 적이 있다. 예전의 나라면 이렇게 말했을 거다.

“에너지 바우처 말씀하시는 거 같은데요. 선생님 수급자신가요?.”

“수급자는 아니에요”

“그럼 신청못해요. 그건 수급자만 신청할 수 있어요. 또 수급자라도 만65세이상이거나

한부모가족이거나 심한장애가 있으시거나... 근데 선생님은 해당없잖아요.”

“아...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 무슨 전기세가 18만 원이나 나왔대요? 너무 많이 쓰신 거 아니에요? ㅋㅋ

근데 선생님은 수급자 아니라서 신청못해요”

“에휴, 에어컨 못 쓰겠어요.”

“그래도 너무 더우면 적당히 트세요. 너무 많이만 쓰지 마시고요. 들어가세요~”

이전에는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딱딱한 정보들만 전달하는 것보단 이런 가벼운 농담이 오갈 때, 오히려 민원인의 마음을 얻고 나도 기분좋게 업무를 보게 된다.

민원 업무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대응 모드’가 몸에 밴다.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두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상대방과 웃으며 대화를 하는데 더 초점을 두려고 한다. 일로 생긴 습관이지만, 사람 사이에서는 여전히 ‘따듯함’이 먼저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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