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공무원 시험이 끝나자마자 글을 썼다.
시험을 망쳤다는 신세 한탄을 할
시간도 잊은 채 한 달 동안 글만 썼다.
더 정확히는 처참하게 망해버린 점수를
볼 용기가 없어 책 쓰기라는 거창한 목표에
애써 눈길을 돌린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자책과 후회나 하며 한량처럼 사는 것보단
이렇게라도 무언가 끄적여서 다행이다.
덕분에 지금까지의 인생을
가까이서 곱씹어볼 수 있었다.
공부하면서 심심할 때마다
심리테스트를 하던 나였기에 스스로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써보니 MBTI로 정의했던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었다.
이전에는 한 곳의 웅덩이를 파는 것이 아닌
여러 곳의 웅덩이를 조금씩 파는 것처럼
보인 게 인생이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만 해서는 절대 웅덩이에서
보물을 발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내 삶을 불안정하다고 느끼게 했다.
하지만, 글을 쓰며 돌아보니
그간의 판 웅덩이들은
점점 한 웅덩이로 합쳐지고 있었다.
아무런 접점이 없는 경험들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을 느꼈다.
동시에 왜 공무원을 준비해야 하는지,
공무원이란 직업과 스스로가
정말 맞는지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답은 예스였다.
어쩌면, 지금의 길을 오려고
이러한 시간을 경험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살짝은 나르시시즘에 빠져버린 것 같으나
인생에 의미가 없어진 시점에
이런 병은 언제든 환영이다.
취업준비생에게 자아도취는 직장인이
아침마다 반드시 섭취해야 할
아메리카노 같은 존재다.
“살다가 내 인생이 또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이 글을 보며 위로가 되길 바란다.
나는 충분히 잘 지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한 달 동안 쓴
<나의 20대>가 완성되었다.
폭락하는 주식장처럼 무너진 자존감은
글을 쓰면서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일 년 반, 두 번째 공무원 시험 탈락.
그러나 오히려 더 끈질기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