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공부의 신
스무 살 재수생 시절 <공부의 신> 드라마를 참 좋아했다. 공부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산 주인공이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해 최상위 학교에 합격하는 진부한 스토리다.
비록 뻔한 전개이지만 재수생 시절 가장 큰 한 줄기 희망이었다. 저 인생이 내 인생이 될 것임을 굳게 믿었다.
세 번째 공무원 시험은 글을 쓰면서 바짝 오른 자존감과 함께 심기일전으로 준비했다. 가장 먼저 스파르타로 관리해주는 공무원 학원에 등록했다. 매일 아침 6시 30분에 기상해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을 들고 비몽사몽 상태로 학원에 갔다. 학원엔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추리닝 차림이다. 한 손엔 도시락을 들고 슬리퍼까지 신고 있으면 고시생 그 자체다. 학원엔 많은 학생이 있지만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누구 하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그런데도 같은 상황에 있는 친구들과 한 공간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위로가 되었다.
하루 식비는 최대 오천 원을 넘기지 않았다. 오천 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리스트는 이미 정리해두었다. 두 가지 음식을 먹는 사치를 부리고 싶을 땐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사발면. 자극적인 인스턴트 햄버거와 콜라가 생각날 땐 런치할인시간. 든든한 국밥이 생각날 땐 4,500원의 가성비 콩나물국밥.
비록 식사는 초라했지만, 나름대로 그날의 식사를 정하는 것도 소소한 행복 중 하나였다.
또, 긴 지루한 시간 동안 자극을 준 것은 수험일기였다. 하루하루를 기록하다 보면 어떤 날은 이것밖에 못 하나 자괴감도 오지만 이내 쌓여가는 기록을 보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에 괜히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게 희망을 품으며 하루 열 시간의 공부 시간도 거뜬히 버틸 수 있었다. 노력한 만큼 모의고사 점수도 합격권으로 점점 다가갔다. 두 번째 시험 준비와 달리 세 번째 시험 준비는 순항이었다. 정말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젠 당당히 합격할 일만 남았다.
세 번째 시험장에서 시작종이 울리기 전까지 내 심장은 평온했다. 평소처럼만 풀면 된다. 그럼, 이 긴 시간도 오늘부로 끝이다. 시작종과 함께 가장 자신 있는 한국사부터 풀었다. 답이 모두 보였다.
‘이건 무조건 백 점이다.’
시험지를 풀면서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년 반 동안 시험만 세 번째. 한국사능력검정시험, KBS 한국어능력시험 등 다른 자격증 시험까지 모두 합친다면 족히 열 번은 넘게 봤을 것이다. 이젠 시험지를 풀면서 내 점수 또한 추측이 가능할 지경까지 올랐다. 한껏 들뜬 상태로 자신 있는 행정법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말. 렸.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