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는 운동의 원동력

[책리뷰]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트레시 코텀의 <시크>

by 징 zing


『시스터 아웃사이더』 책을 읽다가 마주하게 된 변희수 전 하사의 부고에서 벼리어 나가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 달 사이에 트랜스젠더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침묵을 깨고 용기를 낸 그들이었지만 세상의 편견과 혐오 속에서 그들의 삶은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타자에 의한 죽음’ 앞에서 나는 분노보다는 애통함 속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왜 나의 감정은 제일 먼저 ‘분노’가 아니었을까.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는 강의문, 산문을 모아놓은 에세이집인데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분노’와 ‘차이’다. 두려움을 깨고 침묵의 무게에서 벗어나야 하며, 성차별적인 사회 속에서 분노의 유용함을 강조한다. 여러 감정 중의 ‘분노’는 한계가 분명 존재하지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행동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분노의 활용’이라는 챕터에서 그는 “제게 빛이 된 것은 분노였습니다.”(225쪽)라고 말한다. 나는 요즘 분노조차 낼 수 없는 무기력감, 또는 분노가 이상하게 다른 곳을 향해 갈 때 무서움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분노를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할 것인지 중요해 보인다.


로드의 ‘말하기’는 여성/흑인/레즈비언이라는 자신의 위치와 맞닿아 있다. 미국 사회 속에서 로드의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음을, 문장 마디마디에서 알게 한다. (번역본보다 원본으로 읽으면 그 점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나 두려움이라는 난관을 마주하게 됩니다. 가시화에 대한 두려움, 가혹한 시선과 비판에 대한 두려움, 고통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말입니다.

…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언어와 그것의 의미를 중시하기보다 두려움을 더 중시하도록 사회화되어 왔지만,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사치스러운 최종적 순간만을 기다리며 침묵한다면, 그 침묵의 무게는 우리를 질식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침묵입니다. 그리고 깨져야 할 침묵은 너무나 많습니다.” (53-54쪽)


혐오와 차별의 백래시가 점점 심화되는 요즘, 더욱 두렵고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들은 그 극단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로드의 글 중 ‘성애의 활용’이라는 챕터도 매우 인상 깊었는데, 로드는 성애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정의한다. “내 안에 숨어 있는 핵심적인 알갱이”라고 할 수 있는 성애는 그동안 혼란스럽고, 사소하며, 정신병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감각이라고 폄하되면서 포르노그래피 같은 것으로 착각하여 왔다는 것이다. “우리 안의 가장 깊고 강력하고 풍요로운 것을 신체적·감정적·심리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 즉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사랑을 향한 열정”이 성애이며, “다른 사람과 어떤 일을 깊이 나눌 수 있게 해 줌으로써 힘을 주며”, “기쁨을 두려움 없이 솔직하게 향유할 능력을 열어 주는 역할을 한다”(70~74쪽)고 강조한다. 성소수자들을 향해 혐오의 말들을 쏟아내는 그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은 챕터다.


그리고 이 책에서 또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 ‘차이’를 생각해 보면, 요즘 TERF 진영의 트랜스젠더 혐오와 차별을 떠올리게 한다. 여성들 사이에도 수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인종, 국가, 민족, 계급, 성별 정체성, 종교 등 다양한 차이 속에서 단일할 수 없다. 로드는 그동안 “여성인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라기보다는 무시해야 할 대상, 또는 분열의 원인이자 의심의 대상으로 여기도록 배웠”는데, 차이야말로 “우리가 각자의 힘을 벼려 낼 수 있는 강력한 연결점이자 원료”(177쪽) 이기 때문에 우리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것을 재차 언급한다. 우리는 정말 그 ‘차이’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는가? 왜 생물학적인 여성만을 ‘우리’로 환원하는가? ‘자매애 정치’를 비판했던 로드가 말했듯이, 강제적으로 내면화된 우리 안의 억압적 가치에 대해서도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더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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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미국 흑인 여성, 트레시 맥밀런 코텀의 에세이 『시크』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에세이집이다. ‘시크(thick)’는 흔히 민족지학에서 일컫는 중층 기술을 뜻하면서도 저자 자신이 어렸을 때 들었던 외모의 표현이다. 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의문을 던지는 방법으로 사회학적 이론과 데이터를 포함하는 한편,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담는다.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 는 1984년에 출판된 반면, 이 글은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오바마, 트럼프 시대까지도 다루고 있다. 두 글은 약 35년의 차이가 있지만 읽고 있으면 거의 변화가 없는 ‘동 시대성’을 느끼게 한다. 코텀의 글은 ‘시크(chic)’하면서도 명쾌하다.


인상 깊었던 챕터 중의 하나인 ‘아름다움의 이름으로’에서는 기존에 페미니즘에서 논의되었던 여성들의 외모 강박증 논의를 뛰어넘어 경제적, 정치적 조건까지 이야기한다.

“나를 아름다움의 범주에서 배제하는 것은 사실상 나의 블랙니스(Blackness)다. 블랙니스가 식민지화, 제국주의, 패권주의 등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아름다움이 제 기능을 다하려면 나를 배제해야 한다. 누구에게 아름다울 수 있는 자격을 줄 것인지, 아름다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아름다움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 아름다움을 지닌 자들에게 어떤 권력을 부여할 것인지, 자신이 소유한 아름다움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용한 훈육 효과를 어디까지 조절할지 등을 정하는 구조가 바로 ‘빅 뷰티’라고 부르는 개념이다. 빅 뷰티는 그 의미를 규정할 때부터 내 역사와 내 뼛속에 깊이 새겨진 블랙니스를 배제했다. 아름다움은 백인 여성을 위한 개념이다. 모든 백인 여성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아름다움이 자본과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다면 절대 흑인 여성을 포함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80쪽)


코텀은 “일부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보다 더 평등한 대우를 받게 되는 사회에서 아름다움은 매우 훌륭한 자본의 형태”가 된다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이 유용한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지 지적하고, 누군가는 배제하고 누군가는 포함하는 방식으로 정치적으로도 이용되고 있음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그리고 흑인 여성에게 ‘아름다움’은 ‘노력’으로도 될 수 없음을 역으로 ‘블랙니스’의 위치성을 묻고 있다.


코텀이 겪은 한 에피소드를 통해 미국에서 흑인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조산으로 딸을 잃었는데, 사흘이 넘도록 산통이 있었지만 병원에서 설명조차 듣지 못했다. 2017년 세리나 윌리엄스는 딸을 출산했는데, 인터뷰에서 그녀는 자신이 치료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간호사를 설득하기 위해 세계적인 슈퍼스타로서의 위력을 총동원해야 했던 일을 털어놓았다. 이것은 흔히 사회에서 흑인 여성의 ‘무능하다’는 이미지가 얼마나 무감각하게 덧씌워져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코텀이 지적했듯,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부와 명예마저도 대체해버릴 정도의 위력을 가진다. 이러한 경험의 단계들이 미국의 임신한 흑인 여성들이 ‘전형적’으로 거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흑인 여성은 임신 중 혹은 출산과 관련된 원인으로 사망할 확률이 백인 여성에 비해 243% 더 높다(104쪽)고 한다.


오바마와 트럼프를 모두 대통령으로 선출했던 미국인들에 대한 분석도 인상적이다. “백인 유권자들이 버락 오바마를 하나의 개념이자 대통령이 되도록 허용한 것은 자신들을 화이트로 규정하는 역설을 근본적으로 투사하는 것이 오바마였기 때문”(132쪽)이라는 것이다. 오바마가 흑인이고 아니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화이트니스는 블랙니스의 존재, 즉 종속을 필요로 하면서 궁극적으로 표현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오바마는 이 ‘역설’ 속에서 만들어진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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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와 코텀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사상가인 페트리샤 힐 콜린스는 「흑인 페미니즘 사상」이라는 책을 통해 인종, 계급, 젠더를 둘러싼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억압과 차별, 구조적 제약을 알려주었다. 한국에서도 차별은 매우 교차적으로 얽혀 있다. 억압의 위계란 없으며, 그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로드가 말했듯이 “우리 스스로와 서로에게 도움이 되도록, 우리가 하는 일과 미래에 도움이 되도록 강해지는 것. 힘 기르기는 이런 자기 탐색의 결과이다” (336쪽) 나는 누구인가? 끊임없는 자신의 성찰부터 다시 시작하자. 그리고 깨닫자. 차이는 곧 운동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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