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떤 미완의 이별

by 징니보

처음 만났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강아지를 사달라고 그렇게 졸랐었다. 결국 끈질기게 조르던 끝에 만 9세가 되던 생일날 그렇게 너를 처음 만났다. 처음에는 양같이 꼬불거리는 갈색털에 뾰족한 입, 초록눈을 한 네가 내가 상상하던 백구 같은 느낌과는 달라서 사실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투명 관 같은 곳에 갇혀서 잠만 자던 다른 강아지들과는 다르게 너는 혼자 밖에 나와서 까불고 있었고, 처음 보는 우리를 보고 배를 뒤집어 까며 반겨주었다. 엄마는 너를 들어보곤 여기저기 살피더니 “얘가 괜찮네. 얘로 해. 엄마 피곤해. 얘 아니면 그냥 가.”라는 소리에 얼른 알았어 알았어 데려가자. 나도 좋아. 엄마가 금방이라도 마음을 바꿀까 봐 조바심이 났다. 샵에서는 너를 ‘푸들이’라고 불렀고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너에게 필요한 몇 가지 물품들을 싣고 차 뒷좌석에 앉아 지금보다 작았던 내 품 속에, 훨씬 더 작았던 태어난 지 갓 2개월 된 네가 안겨서 그 '푸들이'는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나도 드디어 강아지가 생겼다. 신이 났다. 집에 돌아와서 인형이불에 작은 너를 눕히고 잠들어버린 네가 혹여나 깰까 봐 티브이도 끄고 한참이나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난 그날로 너한테 완전히 빠져서 언니와 같이 자던 침대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언니. 언니는 쟤 없이 사회생활 할 수 있을 것 같아? 난 못할 것 같아.” 얼른 다음날 학교에 가서 너를 자랑하고 싶었고, 학교가 끝나면 부리나케 달려와서 너랑 놀았다. 갈색푸들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너를 낯설게 느껴서 “이상하게 생겼네.”라고 말하는 친구라도 있으면 열을 내고 씩씩대며 싸우곤 했다.


그 후로 사회생활의 ㅅ도 모르던 초등학생이 어느새 사회생활을 흉내정도 낼 수 있을 만한 시간인 19년이 흘렀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시간 속에 네가 없던 시간이 없었고, 집에 가면 네가 있는 사실이 나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너와 같이 자랐고, 너는 내가 모든 학교를 졸업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렇게 내가 10대 20대를 거쳐 30대가 될 때까지 너무나도 당연하게 계속 함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래도 네가 ‘노견’의 범주에 들어왔을 때부터는 가끔씩 이별을 생각하곤 했는데,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어떻게 보내주는 게 최선일까 정말 많이 생각했었다. 표현도 정말 많이 하려고 했다.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착각이었다. 마지막은 아무리 준비를 했어도 너무 갑작스러웠고, 같이 보낸 추억이 아무리 많았어도 부족했다.


2001년 봄에 태어난 꽃같이 한없이 사랑스러웠던 너는 다시 2020년 봄에 떠났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고 봄을 좋아하던 너였다. 감기에 걸리거나 장염에 걸려도 자고 일어나면 금방 나았던 너였는데, 마지막 일주일, 계속해서 경련을 일으키며 아파했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엄살이 심하긴 했어도 정작 아픈 티는 잘 내지 않던 네가 정말 많이 아팠다. 2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어도 마지막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랐다. 울면서 어떻게 해줘야 돼 누나가 어떻게 해줘야 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허망했다. 그렇게 찾아온 마지막은 처음과 마찬가지였다. 내 품에 안겨서 아빠 차 뒷자리에서. 다른 점은 점점 굳어가는 너를 더 식어가지 않게 담요에 둘둘 두른 채 펑펑 울면서.


너에 대한 마지막 일기는 몇 주가 지나도 도저히 마무리를 짓지 못하겠다.



그만큼 아직까지 이름만 생각해도 눈물이 나는 내 동생. 어떤 날은 네가 떠났다는 사실이 전혀 안 믿기고 여전히 집에 가면 네가 건강했던 모습으로 반겨줄 것만 같다가도 어떤 날은 네가 떠난 게 아득하게만 느껴지기도 해. 잘 있는 거지? 너무 착하고 똑똑하기만 했던 너라 행복하게 있을게 당연한데도 매일 걱정이 된다. 외롭진 않을지 무섭진 않을지 아프진 않을지. 그래도 네가 마지막까지 보여준 삶의 의지 누나도 절대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갈게. 너를 만난 건 누나 인생의 최고의 행운이자 행복이었어.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나는 날, 누나 잊지 말고 꼭 예전처럼 달려와서 반겨줘. 그때 더 재밌게 많이 놀자.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만 지내고 있어야 돼. 너무 보고 싶다 내 동생. 생일 축하하고 사랑해 영원히


2020.04.2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미안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