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안.
오늘 하루 종일 엄마가 창피했던 것 같아.
효도랍시고 내 기분 좀 좋아지고 싶었던 것 같은데 실패였네.
원래 서울에서 태어나 나고 자란 서울태생인 엄마가. 아침부터 시골에서 2시간 걸려 올라온 엄마가.
너무 바뀌어버린 서울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게 품위 없다고 생각했어. 미안.
젊은 남자 의사 선생님 앞에서는 또 작은 목소리로 의사표현도 못하는 엄마가.
젊은 여자 실장님 앞에서는 큰 목소리로 시술비용 깎으려는 모습이. 그것 또한 품위 없다고 생각했어. 미안.
'엄마 여기 그런 곳 아니야-'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겨우 참았어. 하루 종일 이런 말들을 애써 눌렀어.
두 번째로 갔던 병원에서, 엄마가 아무도 안 먹는 그냥 비치용일 뿐인 싸구려 녹차와 둥굴레차 티백을 굳이 종이컵에 담아 오는 것도 사실. 창피했던 것 같아. 미안.
대기실에서 그거. 우리만 마셨어.
엄마 거기에 있던 과자도 맛 별로 가져와서 먹었잖아. 티백도 그냥 테이블에 올려놓고.
내가 눈치 주니까 그 뜨거운 거를 그냥 손으로 집어서 물 뚝뚝 흘려가면서 버리러 가고. 휴지를 발로 쓱쓱 닦으면서 물 닦고 치우고. 대기실을 부산스럽게 돌아다니고. 엄마는 몰랐겠지만 거기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엄마를 흘낏흘낏 쳐다봤어. 그게 싫었어. 그게 창피했어. 미안.
'나는 이런 데 오면 안 이러는데. 엄마는 왜 이럴까. 안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미안.
오래 기다리다가 원장님 만나러 들어갔잖아.
근데 원장님이 엄마 흉터 치료 어렵다고 했잖아. 그랬더니 엄마가 왜 안되냐고 원장님한테 거의 떼쓰면서 해달라고 해주면 안 되냐고 될 줄 알고 먼 데서 왔는데, 기대하고 왔는데 왜 안 되는 거냐고 그러다가 결국. 엄마 얼굴 감싸고 속상하다고 막 울었잖아. 그 원장선생님이 성격이 좋아서 다행이지, 솔직히 진상이었어. 겨우 달래서 나오려는데, 이런 병원 상담비용 있잖아. 엄마가 거기서 '해결도 안 됐는데 상담비를 받아?'라고 할까 봐 내심 너무 조마조마했어. 그런데 다행히도 원장님이 그냥 가도 된다고 하시더라.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여기까지 왔는데 엄마 좋아하는 고기 먹고 들어가자. 했는데 엄마가 뾰로통한 얼굴로 '밥도 먹기 싫다'라고 했잖아. 짜증을 꾹꾹 눌러 참고 웃는 얼굴로 겨우 엄마 데리고 근처 고깃집에 데려갔지.
솔직히 그 고기도 내가 사려고 했는데, 엄마가 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그냥 '엄마가 사주는 거야?'하고 가만히 있었어. 엄마가 이 고깃집 고기 비싸다고 내심 생각하는 거 알고 있었어. 근데 그게 이 동네 보통 물가였고, 다른 옵션은 없었어. 그냥 이런 거 하나하나 생각해야 되는 게 좀 짜증이 났었어. 미안.
사실 여기까지는 그냥 원래 엄마모습이니까. 그러려니 했던 것도 같아.
내가 어디서 뭔가, 뭔가 거리감이 느껴졌냐면.
나 이렇게 추운 날. 그냥 택시 타고 다녀.
근데 엄마가 '추우니까 우리 빨리 지하로 가자.'라고 하는데 뭔가, 뭔가가 마음에서 울컥하는 게 있더라.
나는 엄마가 잘 키워줘서, 추우면 '지하로 간다'는 생각을 안 하고 살았어.
지하철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 단어가 주는 어감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
오늘 내가 느꼈던 모든 것들이 '추우니까 우리 빨리 지하로 가자.'에 담겨있는 것 같아서.
그래. 엄마가 없는 사실 내가 배운 교양이라는 거 별게 아니라, 엄마 시간한테 뺏은 거잖아.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모든 아비투스 같은 거. 다 엄마가 입지 않고 먹지 않고 모아둔 거 나한테 준거잖아.
그래놓고 나, 엄마를 창피해하고 있다. 그러고 있었다. 그게 제일 미안.
엄마의 젊음을 먹고 자라서 나는 잘 지내고 있어. 미안. 효녀인 척도 할 수 있네. 미안.
오늘 밖에서 보니 엄마 많이 늙었더라.
외모 때문에 속상한 거 보면 아직 엄마도 소년데.
내가 내 꿈 찾는다고 너무 늦게까지 모른척했어. 미안.
난 언제까지 엄마한테 미안할까. 고마운 감정보다 미안한 감정이 앞서는 건 왜 그럴까. 엄마.
엄마 근데 나는 있지.
추우면 더 높게 올라가고 싶어.
지하가 아니라 저 높은 빌딩 위에 있잖아.
제일 높은 곳으로 가고 싶어.
엄마가 힐끗 쳐다봤다가도 시선을 거두는 그런 빌딩들 있잖아. 그런 곳. 나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어 엄마. 미안. 엄마만 두고 갈 것 같아서. 그게 제일 미안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