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에스컬레이터

누군가를 돕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by 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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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세 번, 일하는 곳에 가기 위해서는 7호선 남구로역에 내려야 한다. 7호선 라인인 우리 집에서 지하철로 환승 없이 10 정거장도 안 걸리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교통수단을 찾았던 건, 남구로역이 너무나 깊숙한 곳에 있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경사 하나를 계단으로 올라가서 코너를 돌면 에스컬레이터가 나온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코너를 돌면 두 번째 계단이 나온다. 계단으로 또 한 번의 경사를 올라가 카드를 찍고 나가면, 드디어 출구를 향한 마지막 에스컬레이터. 계단-에스컬레이터-계단-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대체할 에스컬레이터 따위는 없다. 오르막 계단 경사에 첫발을 내딛기 전에는 늘 몇 초간의 마음 준비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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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냉방 칸에 타서인지, 시원한 것도 더운 것도 아닌, 텁텁한 공기를 가득 안은 채 지하철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올려다본 계단에는 접이식 손수레를 끙끙대며 끌고 올라가는 할머니가 보였다. 할머니는 이미 계단 정상에 다 오른 터라, 에스컬레이터를 지나 다음 계단에도 할머니가 혼자 손수레를 끌고 올라간다면 도와드려야겠다 생각했다. 더불어 도와드릴 수 있을까 생각했다. 누군가를 돕는 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고, 난 수줍음이 많다는 이유로 용기 내기를 겁내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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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나는 거리가 꽤 있었기에 서둘러 계단을 올라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코너를 돌아 계단을 보니 끙끙대며 올라가는 할머니가 보였다. 내가 할머니에게 뛰어가는 동안 머릿속에는 할머니에게 건넬만한 여러 낱말, 문장들이 날아다녔다. 날아다니던 문장들은 할머니 가까이 가니 저 멀리 사라져, 난 그저 가만히 손수레의 바퀴 부분을 들어 올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같이 한 발짝, 두 발짝, 세 발짝. 30초도 채 안 되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왜 그리도 마음이 벅찼을까.


계단을 다 오르고 손수레를 내려놓자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내뱉었다. 내가 한 행동보다 훨씬 큰 표현에 대한 민망함 때문이었을까, 할머니의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 채 가볍게 묵례를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 후에 내 몸을 휘감은 뿌듯함은 나를 하루 종일 기분 좋게 했다. 더 큰 도움을 얻은 사람은 나일까, 할머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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