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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현 Nov 27. 2019

드라이플라워가 싫은 이유

일부는 말라가는 채로, 일부는 썩어가는 채로


갑자기 꽃이 사고 싶은 날이 있다. 

나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는, 소개팅에서 만난 그 남자는, 내가 꽃 받는 걸 좋아한다고 말한 이후부터 만날 때마다 꽃을 사 왔다. 시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번 사다 주는 드라이플라워가, 나는 싫었다. 드라이플라워에만 생긴다는, 인터넷에서 절대 박멸 불가라고 겁을 주는 권연 벌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나에게 드라이플라워를 사주는, 시들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드라이플라워가 싫었다. 살아있는 것을 그 상태 그대로 정지시켜 미라로 만들어버린 것만 같은 거부감. 


그와 나는 이토록 달랐다. 시들지 않아서 드라이플라워를 좋아하는 남자와 시들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드라이플라워를 싫어하는 여자의 만남은 많은 부분에서 부딪혔다.

침대 머리맡에는 그가 준 꽃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내가 드라이플라워를 싫어한다는 말을 한 이후로, 그는 늘 생화를 선물했다. 꽃은 받은 즉시 화병에 꽂아뒀고, 시들 해질 때쯤 말리기 시작했다. 꽃이 말라 가는 속도처럼 그와 나의 관계는 금세 시들해졌는데, 이유는 다름 때문이었다. 다름이 다르게 느껴지기 위해서는 같은 부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와 그 사이에는 어떠한 같은 부분도 없었고, 같은 부분 없이 나열된 다른 부분들은 그를 낯선 사람에 머물게 했다. 어쩌면 다 핑계일지 모른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침대 머리맡 벽 한가득 그가 준 꽃들이 거꾸로 매달려있다. 일부는 말라가는 채로, 일부는 썩어가는 채로. 방에서 나는 이상한 냄새가 썩어가는 꽃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건, 그와 헤어지고 알았다. 포장지 채 화병에 넣어둔 꽃을 바로 말린 게 이유였던 것 같다. 곰팡이가 피거나 썩어가는 꽃을 모조리 벽에서 떼어내 치우니 침대 머리맡에는 그가 준 드라이플라워만 남았다. 어쩌면 그가 현명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백합 한 송이를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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