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알아주는 예술학교를 나왔다. 이 학교에 속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자부심은 넉넉했고 설명은 충분했다. 해가 갈수록 학교 이름을 말하기 부끄러워졌던 건, 남들이 내 학교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만큼 내가 대단치 못한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분명 남들이 알아주는 예술학교를 나왔다. 그런데,
난?
이제 스물아홉이다. 스물아홉인데, 잘 모르겠다.
‘나 진짜 천재 아니야?’
‘좀만 있으면 내 천재성이 발휘되겠지?’
‘천재는 아니어도 잘 될 거야. 늘 운이 좋았잖아.’
‘정말… 잘 될까?’
불신이 믿음을 덮기 시작한 건, 실패란 걸 모르고 살던 내가 실패를 시작하면서이다. 기대해왔던 것들에 하나둘 떨어지고, 기대의 빈자리에 불신이 쌓여갔다. 차곡차곡…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잃으면 온 세상이 나의 적이 된다는데, 그래서 나는 점점 더 외로워지는 걸까?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임현 작가의 [그들의 이해관계]라는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여자 친구의 죽음을 쫓으며, 그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버스 운전기사를 만난다. 주인공은 말한다.
‘기적? 기적이라니. 사고를 피한 게 기적이라면 그러지 못한 쪽은 무엇인가. 기적의 반대말이 뭐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 그게 기적 아닌가? 그러면 뭐, 해주는 그래도 된다는 말인가 그게 다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일이었다는 건가? 그냥 그럴 수 있는 사고였다는 거야 뭐야.’
기적…
평소 아무 의심 없이 썼던 단어다. 반대편은 생각지도 못했다. 기적 반대편에 있던 이들을 덮쳤을 어둠과 슬픔이 느껴졌다. 소설을 다 읽고 자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았다. 눈물이 흘렀다. 도대체 왜인지 모르는 눈물이, 그냥 흘렀다. 외로움 때문일까?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나에게 뭐 하는 사람이냐 묻는다. 나는 글을 쓴다고 한다. 상대가 작가냐고 물으면 민망하게 웃으며 감독 지망생이라 한다. 왜 대답을 하며 움츠러드는 걸까. 아무래도 내 나이가, 지망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기에 너무 늙어버린 거 아닐까라는 생각, 이쯤 되면 번듯한 직함 정도 있어야 꽤 괜찮게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 그 때문이겠지. 벗어나려 해도 잠재되어있는 열등감과 위축, 그 속에서 점점 더 잃어버리는 자신감.
20학번이 들어오는데, 11학번인 나는 졸업하고 여전히 백수다. 나는 예술을 하니까 괜찮아, 남들보다 조금 늦을 뿐이야 다독이지만, 늘 불안하다. 그리고, 혹은 그래서 늘 외롭다.